다음은 지난 2월 제11차 동남부 지역 이냐시오 영성 침묵 피정을 마친 후 손정애(세실리아) 자매님께서 보내오신 글입니다.

 

제11차 동남부 지역 이냐시오 영성 피정 중에

 

 구정 명절날에 묵상피정을 받고 계시는 교형자매님들은 충만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계십니다!

피정지도 신부님의 청명한 목소리가 멍청하게 앉아있는 나를 정신이 바짝들게 깨워주셨다. 침묵묵상 세미나! 이 피정은 CLC 피정이 아니면 만나보기 드문 성격의 피정인 것을 감안하고 참가하였지만, 정신적으로 하는 교회의 봉사보다는 육체적으로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자신을 성령께서 가엾게 보시고 나에게 영적신심을 보태어 주시고파서 이번에 특별히 불러주셨음이라 생각하니,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관대하신 사랑에 재삼 감사와 흠숭을 드릴뿐입니다. 한 가지 기도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이상의 기도묵상을 해야하는 기초 작업은 지도 신부님의 세심하고 자상하신 가르침이 없이는 도저히 깨우치기 어려운 숙제라 생각된다.

 

 CLC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거듭되었던 일이지만 강의 시간마다 주입식으로 관상기도에 관해 설명에 설명을 거듭해주시니 그렇게 익숙치 못했던 나의 이해심이 차츰 이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오랜 세월을 거쳐 염경기도를 바쳐온 기도습관을 강의 방향으로 갑자기 바꾸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것이다.

 

자유묵상 시간을 틈내서 비바람에 시달려 축축하게 젖어있는 낙엽들을 밟으며 급경사 언덕받이를 조심스레 아기 걸음을 걸어서 낯익은 차타후치 강가에 이르니, 궂은 날씨 못지않게 갈색 빛깔을 뿜어내며 흐르는 차타후치 강은 그래도 오랜 세월을 보여주듯 누누히 잘도 흐르고 있다. 세상만사가 그런것처럼 맑고 깨끗하지 못한 소유자는 여기 이런 모습의 형상일 것이라 생각된다.

 

 기도 주제가 떠올라 피정 집으로 되돌아 오기위해서 왼쪽 비탈길을  약 오백 보 정도 걸었을까? 졸졸 음을 내며 흐르는 시냇물 줄기가 검은 돌바닥 지층을 미끄러지며 작은 물방울까지 풍기며 더러워진 차타후치 강물에게 폼이나 내려는 것처럼 제법 세차게 훌러내린다. 어쩌면 인간 행로에서의 경쟁같은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 어머나, 이게 왠일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순간, 냇가를 가로 질렀던 건널목 다리가 한쪽으로 주저앉은 채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때에 무너진 건널목  바닥에 깔려있는 작은 쇠판을 발견하였는데, 아마도 이 작은 쇠조각을 이용해서 건널 수 있는 사람은 건너 보란 뜻인것 같았다. 건너가볼까? 망설이다가 "한 순간의 작은 실수가 영원히 구제 받지 못하는 결과을 초래한다면?" 하는 노파심에 서운함과 아쉬움을 지니고 온 길로 방향을 되돌려야만 했다.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을 묵상으로 보낼 수 있을까? 겁먹은 마음으로 비롯된 피정이 자신도 못느끼는 사이에 날이면 날마다 너무 빨리 지나간다. 아마도 신부님의 지침을 잘 따르고 열정을 다하여 자신을 피정에 투신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마음 또한 흐뭇하다. CLC피정은 여러번 왔지만, 지금처럼 주님을 가까이 모시기는 처음인것 같다.

 

 새속 근심 걱정 다 버리고 이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주님과 함께 호흡하며, 주님과 함께 속삭이며,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실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행복이 아니겠는가?  비오니, 피정이 종치는 날까지만이라도 이 좋은 나만의 호강의 순간이 오래 오래 내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묵상과제는 여러가지 남아 있는데 주어진 시간에 불평을 늘어 놓았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거운 십자가에 묵묵히 매달리신 예수님앞에 엎디어 강의 주제들을 하나 둘 주마등 같이 스쳐 보내며 한 평생 주님께서 나에게 쏟아 부어주신 사랑과  온 나의 생의 은총에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손 정 애 (세실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