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년 7월 10일,  Trinity Washington대학에서 열린 미국 CLC총회에서 미사 중에 하신
세계 CLC Vice- EA이셨던  알베르토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CLC-US National Assembly 2009  
Trinity Washington University, Friday, July 10

강론 1

요즘 우리는 트리니치(삼위일체) 워싱톤 대학교에 “예언자적인” 표현을 어디에서나 보게됩니다. 이 총회에 참석을 위해 등록하는 곳에서나,  가방이나  물병 등에서,  기념 티 셔츠, 또는 사회관에 걸려 있는 총회  배너 등등을 통해서 예언자적인 표현 문구들을 보게 됩니다.

종종 사람들은 예언자를 한 구석에서 소리를 지르고 외치는 사람으로 연상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예언자는 그리스말로, Phemy는 ‘말’이라는 뜻이고 Pro는 ‘어떤이의 이름으로’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작년에 열린 세계 파티마 총회에서 니콜라스 총장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눈, 즉, 성삼위가 전 인류를 바라 보시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니콜라스 총장 신부님꼐서는 하느님의 귀를 가지고 “들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정의를 찾을 때, 고통을 당할 때, 외로움에 , 그리고 억압에 눌릴 때 그들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또, 니콜라스  신부님꼐서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 느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들 가까이 계시며, 그  불쌍한  백성들과 통교하시며 그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십니다. 사랑이 그 첫번째 응답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눈으로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낀 후에,  예언자는 그가 전에 들었던 것에 대해 말합니다. 예언자는 사도의 혀를 가지고 있으며, 절대로 자기 자신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이 언제나 자비의 말씀이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랑의 말씀이고, 그러한 고통에 대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와 성찰의 말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 말씀안에서 또  역사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하느님을 찾고 발견해야 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찾아나서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정말 우리와  모든 순간 순간, 모든 곳에서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세상과 반대되는 속에서  찾아야만 하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구불구불한 줄에서도 언제나 잘 쓰시는 분이십니다.

<강론 2>

오늘 우리 미국 CLC는 우리들의 둥지를 깨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들이 움직이면 우리는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앉아있고 저는 서 있습니다. 우리들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적인 균형입니다. 저는 다이내믹한 역동적인 균형을 선호합니다; 마치 자전거가 움직일때에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 처럼.

우리들은 하느님과 우리 자신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뛰어넘어 밖을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신도들의 예언자적인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내적 성찰만으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본 회의의 주제에 한 마디를 더하고 싶습니다. 나는 분명히 거기에는 우리들이 하고자하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평신도”라는 말입니다.

정관에 나오는 4번. 사명을 받은 공동체를 기억하시나요?

4. 사명을 받은 공동체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을 보다 가까이 따르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예수님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며, 그리스도인 생활 공동체를 교회와 함께 자신의 성소로 인식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의 남녀와 청장년 그리스도인 들로 구성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복지와 창조물의 통합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와 사회 안에서 인간의 가치와 복음의 가치를 증거 하는데 투신하고자 한다. 우리는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우리의 자유를 표현하는 단순한 생활 양식을 통하여 정의를 위해서 긴급하게 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특별히 깨닫고 있다. 우리는 일상의 환경에서 사도적 증거와 봉사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준비하기 위하여, 모든 차원에서 자신의 인간적 삶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완전성에 일치 시키고자 하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모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우리 카리스마를 따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안에서 이러한 삶의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중요한 사명을 이루어나가야 할 영역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가정 생활과 직장,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인 책임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들의 공동체를 우리 자신을 넘어서서 아주 역동적인 방향으로 이끄십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활동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 식별 과정은 우리가 인류의 역사적인 현실성을 가지고 엄청난  그리고 집약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식별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이 속해있는 현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기여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우리들을 지탱해 주십니다.

이러한 식별은 우리들이 행동하도록 이끌며, 성령이 우리안에 활동하심에 따라 우리들이 행동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또한 우리들의 입을 열어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강론3>


저는 또한 ‘공동체”라는 말에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평신도의 예언자적인 공동체라 말함은 오직 하나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 공동체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왕국이 현존함을 증거합니다. 우리  개개인은 이 공동체의 회원으로써 그 증인들입니다!

CLC 회원들은 세계 CLC 총회가 열렸던 파티마에서 니콜라스 총 지도 신부님이 말씀하신 “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 예언자적인 평신도 공동체” 라는 타이틀을 열렬하게 환영하였습니다.

예언은 예언자들 (사람이나 공동체들)에 의해서 만들어 집니다.  하지만  모든 예언자들이 난폭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기억하는게 좋겠습니다.

예언자들은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문제를 제기하며, 박해를 당하고, 쉬운 지지를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일들이 그들의 진실성을 입증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을 뿐더러 피해자처럼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교자처럼 죽습니다!
시간이 흐른뒤,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다른 어떤 것들이 아닌,  그들이 지지했던 바로 그 일들이 그들이 정당했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저는 미국 CLC회원들에게 짧막하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1. 소비지향주의에 대항하여, 꼭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에 대해 식별하기..
    소외.배타적인 것에 대항하여, 사회 정의와 연대감을 쌓아가기..
    정치적인 무관심에 대항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기..    
     다양성과 복잡함안에서 서로 다름에 애해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기..
     폭력에  대항하여, 평화를 위해 마음을 다하기...
     크리스챤  믿음으로 사는 것 그 자체가 예언자적인 삶입니다!

2.  다양성으로 인해서,  서로 다름에 대하여, 또 어떤 새로운 것 때문에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다른 것들을 듣을 수 있어야 하며, 다른이들을 즉각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수용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모든 것을 식별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며, 나쁜 것은 거리를 두십시오. “ (데살로니카 5, 21-22)

3.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믿음은 삶의 가장 큰 모험입니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살리려고 하면,  그는 생명을 잃을 것이다…” (마태 16,25)

4.  가장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이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가난한 이들을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그들은 주님의 친구이기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5. 복음 말씀으로 여러분을 살찌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빵이 하늘로 부터 내려와 세상을 위한 생명을 줍니다.” (요한 6,33)

6.  이것은 아주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Alberto Brito,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