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 정희 대통령의 뇌물
(맥도널드 더글라스社 중역의 증언)

한국의 월남전 참전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이 되었고, 한국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버리는 대가로 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지원을 미국으로 부터 이전을 받게 된다. 그 지원중의 하나가 "M-16 자동소총" 이었다.

한국이 사용하는 무기는 단발식 카빈 소총으로서 M-16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그야말로 장난감과 같은 수준의 무기였었고 우리는 그런 무기를 들고 남북대치 상황을 견디어 내어야만 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군사를 파병하는 조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M-16의 제조 수출업체는 맥도날드 더글라스社 였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의 수출 건을 따내게 된 뒤, 한국을 방문한 맥도날드 더글라스社의 한 중역은 자신들의 무기를 수입해주는 국가를 찾아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하게 된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것도 너무도 더웠던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나는(맥도날드 더글라스社의 중역) 대통령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의 집무실로 걸음을 재촉 하게 된다. 그리고 비서관이 열어주는 문안의 집무실의 광경은 나의 두 눈을 의심케 만들었었다.

커다란 책상위에 어지러이 놓여 진 서류 더미 속에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이는 책상 위에 앉아 한손으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남은 한손 으로는 부채질을 하면서 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있었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었다.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지만 도저히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 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모순이 내안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손님온 것을 알고 예의를 차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린 양복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러닝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미국 맥도널드 사에서 온 데이빗 심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 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앉으시오." 한여름의 더위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 나 혼자 있는 이 넓은 방에서 그것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 것은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부채 하나면 바랄게 없지만 말이오. 이 뜨거운 볕 아래서 살 태우며 일하는 국민들에 비하면 나야 신선놀음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 동안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겠나?" 나는 그제야 소위 한나라의 대통령 집무실에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봤던 여러 후진국의 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 .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네. 각하." 비서관이 에어컨을 작동하고 비로소 나는 대통령과 방문 목적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나는, 내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이야기를 얘기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한국의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들이 보이는 작은 성의.. . ." 나는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박 정희 대통령)는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돈이구려."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머물렀다. 나는 그 역시 내가 만나본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알고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실망이 처음 그에 대해 느꼈던 왠지 모를 느낌이 많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거요?"
"각하, 맞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각하."
그는 수표가 든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 봉투를 보며 의아해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자, 이돈 100만 달러는 이제 내 돈이오. 내 돈이니까 내 돈을 가지고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지금 당장 이 돈의 가치만큼 총을 가져오시오. 난 돈 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소." 나는 왠지 모를 의아함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 나에게 준 이 100만 달러는 내 돈도 그렇다고 당신 돈도 니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 타향에서 그리고 저 멀리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 나라의 아버지로서 내 배를 채우데 사용할 수 있겠소." "이 돈은 다시 가져가시오. 대신 이 돈만큼의 총을 우리에게 주시오."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의 소총을 더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나는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웃음을 보았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아버지의 웃음을. .  
그렇게 그에게는, 한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형제들이요 자식들임을 느꼈다. 배웅하는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을 다시 한 번 둘러본 나의 눈에는 다시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크게 보이는 참다운 한나라의 대통령으로 보였다.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 당시 더글라스 맥도날드사의 중역 / 데이빗 심슨 올림 =

제가 학창시절 삼선개헌을 반대하며, 박 대통령을 한 깡패 대장 정도로 비하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의 생각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제 제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며, 따라오는 후배들을 자신모습에서 이해하고 안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한다는 채찍으로 이 글들이 느끼게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런 미움의 화살에도 건건히 버티고, 결국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제게 다가오는군요.

김영기 가브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