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어릴 적 나는 형들과 함께 자주 ‘미사 놀이’를 했다. 큰형은 신부님 역할을 하고 둘째형은 종을 치는 자격이 부여된 이른바, ‘우복사’ 그리고 막내인 나는 아무런 역할도 없이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러나 이 놀이가 너무나도 흥분되고 즐거워서 한 번도 싫은 불평을 하지 않았던 ‘좌복사’ 역할을 했었다. 우리는 줄곧 우리 집 찬장에서 어머니가 아껴두시던 고급 크리스털 와인잔을 성작으로, 그리고 그 당시 가장 제병을 닮은 빵이었던 삼립호떡을 성체로 가장하고 자못 진지하게 우리들만의 예식에 열정을 쏟곤 했었다. 큰형이 삼립호떡을 신부님처럼 거양할 때, 작은형은 우리 집 강아지, ‘로보’가 달고 있던 종을 잠시 떼어서 “딸랑~딸랑~” 종을 치곤했다. 우리는 성혈대신 칠성 사이다를 이용했는데 나는 유독 그 칠성 사이다의 목을 케하게 쏘는 맛 때문에, 얼른 미사가 끝나고 그 사이다를 맛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날, ‘미사놀이’가 끝나고 형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나 혼자 마당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방금 큰형이 벗어던지고 간 사제복(우리는 색색별 보자기를 어머니 장롱에서 꺼내 쓰곤 했다.)을 목에 두르고 아직 단물이 약간 배어 있는 성작을 들고 신부님을 흉내 내어 잔을 높이 들어 보았다. 그리고 아직 약간 잔 안에 남아 있는 사이다의 단물을 무슨 쓴 잔을 들이키듯이 장엄하게 목에 넘기고는 잠시 작은형이 되어 종도 쳐보고 일인 삼역을 다 소화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옛집 마당에서 형들과 함께 놀던 추억이 사제서품을 앞 둔 지금 가장 큰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그 당시 우리들의 놀이에서, 이미 우리의 동무가 되어 함께 놀아주신 예수님의 인간미 깊은 유머와 관대함이 새롭게 마음 속 깊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미사 전례에 관한 교회의 교령과 가톨릭 신앙의 전통을 학문적으로 익히고 심화해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릴 적 가졌던 ‘미사놀이’에서 무구한 순수로 큰형이 들어 올리던 성작을 쳐다보던 그 어린 시절의 순수가 가장 중요한 신앙의 태도라고 스스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큰형이 신부님을 흉내 내어 사이다 잔을 진지하게 들고 나즉이,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는 말과 함께 성작을 들어 우리들 앞에 현현했을 때, 우리는 어느 누구도 방금, 큰형이 한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본당 신부님을 흉내 내어 그렇게 한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른 후, 이렇게 매일 신부님 역할을 독차지 했던 큰 형은 나보다 훨씬 먼저 사제가 되어 어머니 장롱 속 보자기 대신 성 교회의 제의를 입게 되었고, 아무런 역할도 없이 형들을 쫓아다녔던 막내인 나는 사제 서품식을 앞두고 어린 우리들을 벌써 진즉에 축복해 주셨던 그분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고 있다. 여전히 나는 예수님께서 남기신,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분께서 ‘이를’ 행하라는 말씀이 단순히 미사 거행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제의 삶은 바로 그분께서 남기신 ‘이를’ 행하라는 말씀에 모두 농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이것은 바로 온 존재로서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해야하는 사제직의 본질이 계시되어 있는 까닭이다.

   나는 ‘이를’ 행하는 사제가 되고 싶다. 서품의 의미는 바로 당신 자신이 사제이셨던 예수께서 나의 삶 안으로 육화하시어, ‘이를’ 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찾고 갈망하도록 초대하는 완전한 그분의 선물이다. 나는 나의 온 생애를 통해 그분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고 싶다. 끝으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많은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예수회 후원회 모든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분들께서 성원해 주신 염원을 차마 잊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오스딩 성인께서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자신의 신원에 대해 남기신 말씀처럼, 사제직의 본질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구현됨을 나는 믿는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사제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
이랍니다.”
(For you, I am a priest.
With you, I am a Christian.)
St. Augustine-

이글은 6월 예수회 후원지에 실린 글입니다. 도미니코 신부님은 오늘 (7월 1일) 명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