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의 평화

일하면서 잠깐 나가본 이곳의 가을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고,
곱게 물든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어릴 적 고향 들판의 황금빛 물결과 고운 빛 코스모스 들길로 저를 데려 갑니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제 마음도 넉넉하고 여유있는 이 가을 되기를 빌어 봅니다.

19번 영신 수련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무리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않다가 용기를 내어 시작한 이 수련이, 저에게는 큰 축복이었고 동시에 제 삶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이 수련을 시작하기 전, 준비 기도 중에 ‘네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택했다’는 말씀에, 떨리는 마음으로 늘 그분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며 시작했었지요.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그 분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그 사랑을 통해, 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텅 비어 껍데기만 남아있던 제 안에서 새로운 희망의 살이 돋아나옴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 제 자신 보다도 저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을 통해, 제 모습을 찾아 가던 길 들, 제 마음의 무덤에 무거운 돌이 굴러나가던 그 분의 부활.

때때로 어둡고 힘든 날들, 절망의 바닥에 주저앉았던 날에도, 그 분께서는 늘 저와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이 주셨던 위로와 평화로, 늘 다시 일어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수련을 마치며, 그 분과 함께 했던 시간들, 더 충실히 잘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마침이면서, 동시에 또 제가 CLCer로써 살아가는 여정에, 걸음마를 배워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마음입니다. 제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제가 늘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며, 그 분께 저를 내어 놓을 수 있도록, 저의 말과 행동과 태도를 통해서 그분을 증거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그 동안 기도 중에 저를 기억해 주시고, 또 매 주 영적 지도를 해 주셨던 자매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 드립니다. 하느님 안에서 만났던 그 시간들이 저에게는 보석처럼 소중한 만남이 되었고, 제 마음 안에 늘 함께 할 것입니다.



10월 12 일 2006년

설 헬레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