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류수사입니다.
지난 토요일 저까지 포함해서 열세명의 형제들이 함께 서품을 받았습니다.

아틀란타에 계신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기도 덕분에 서품미사 내내 싱글벙글 즐거웠습니다. 형제들이 부제품을 받는 것만 봐오다가 실제로 받아보니 뭔가 주시는 기쁨이 다르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품미사 중에 느꼈던 것들을 부제수품 전례를 중심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형제들의 모국어에 따라 환영인사가 끝나고(스페인어, 베트남어, 영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로 환영인사를 했습니다), 힘찬 성가가 성당 안을 채우기 시작하자 향, 십자가, 성서를 뒤따라 하얀 알브를 입은 열세명의 형제가 두명씩 찍지어 두손을 모으고 입장을 시작하였습니다. 뒤를 이어 축하해주러 오신 많은 신부님들께서 줄지어 입장하시고, 그 다음에 주교님께서 이곳 원장신부님과 부제 복사와 함께 입장을 하였습니다. 처음에 함께 입장하면서 약간 긴장되었지만 미사 진행과 함께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아이라서 말할 줄 모른다는 예레미아 예언자를 처음 부르시면서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준다" 는 감동적인 장면을 그린 독서 (예레미아 1:4-9)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만찬에서 주시는 새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그린 복음(요한 15:9-17)을 들으면서 우리 모두를 통해 말씀하시는 분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독서, 복음, 낭독 후, 원장 신부님의 호명에 따라 회중들 앞으로 한사람씩 불리워 나아가 줄을 선 다음 부제로서 봉사할 사람으로 주교님께 아뢰고 주교님의 선포로 신자들께서 화답으로 힘찬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이어 봉사의 삶으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주교님의 강론이 있은 다음, 부제로서의 지켜야할 삶의 서약을 큰 소리로 회중들 앞에서 합니다. (주님의 모범을 따라 겸손과 사랑으로 기도생활을 깊이하고, 독신생활을 지키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한사람씩 주교님 앞에 무릅을 꿇고, 두 손을 주교님 손 안에 넣고서 순명의 서약을 합니다.

그 다음 열세명의 형제들이 신자석 통로에 분산되어 선 다음, Please kneel down 이란 멘트와 함께 성당 바닥에 엎드리면서 부제직을 성인들의 기도로 도와달라는 성인호칭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인호칭기도가 울려나올 때에 처음 든 생각은 정말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러 오셔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차 성인들이 이름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자 그 이름에 해당되는 제가 알고 있는 분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오르게 시작하더군요. 그 모든 분들의 기도 덕분에 이자리에 있음을 느끼면서 감사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마침내 한국 성인들이 기도속에 불리워지자, 비록 짧은 한소절에 불과했지만, 박해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이웃들을 돌본 조선의 어르신들이 떠올랐습니다. 때가 낀 하얀 무명옷을 입고, 햇빛에 그을린 깡마른 얼굴에 하회탈의 환한 미소를 지닌 조상 어르신들께서 꽹과리, 징을 울리면서 축하해주고 계시다는 느낌이 잠시 들었습니다. 이런 상상은 제가 작년에 그곳에 머물면서 함께 배운 그분들의 삶이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부복한 자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전 리허설 때에는 잠시 엎드렸다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예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드디어 엎드려 이마에 바친 두팔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평소에 안쓰고 있었던 근육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낮은 자세로 봉사한다고 이렇게 엎드리는 것은 겸손의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고, 짧은 순간의 낮은 자세는 큰 어려움없이 가능할 지 몰라도, 긴 시간동안 편한 자세가 되기란 쉽지 않을거라는 말씀으로 들려왔습니다. 현기증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도 천천히 일어나야 했습니다.

성인호칭기도가 끝나고, 성령께서 오심 청하는 노래가 나직하게 흐르는 가운데에  다시 주교님 앞에 한사람씩 불리워 나아가 머리에 안수를 받습니다. 전체 안수가 끝나고 주교님께서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열세명 각자가 사전에 부탁한 사제들이 나와서 부제품의 상징인 부제 영대를 매어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사람씩 주교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복음을 함께 잡고서, 주교님께서 "Believe what you read, preach what you believe, and practice what you preach" 를 말씀하십니다. 모두 다 함께 모인 다음 수품을 축하하는 평화의 인사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이로서 부제수품 예식을 마치고 평소 때와 같은 성찬에 전례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제단에서 주교님을 도와서 성체, 성혈을 나눌 때 함께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정말 많은 분들이 다가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축하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분께 시선을 두어야할지 몰랐습니다. 피정을 함께하셨던 분들, 동창들, 다락방 모임회원들, 구역회원들, 함께 공부하는 신부님, 수사님, 목사님, 수녀님, 젊은 청년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도와주셨던 교수님, 스탶분들, 이분들 모두 관대하신 마음으로 스스로의 시간을 버리고 단지 저희 수품자들을 축하해주시기 위한 시간에 합류하신 분들이란 생각이 드니 정말 무어라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기쁜 시간을 위해서 스스로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시면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몸과 마음으로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이 이 분들과 똑같이 함께하신다는 마음 벅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 모두가 성인 호칭 기도할 때 마음 속에 함께하신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아낌없이 축하의 선물을 해주시는 이 분들이 다름아닌 바로 그 성인들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분들을 통해서 주시는 자비의 선물이라는 생각에 이 분들께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함께 많이 기도해주신 아틀란타 공동체 여러분들께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선물을 과분하게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예수님의 도움으로 그물이 찢어질 것같이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가 주님께 죄인이라고 고백하신 마음을 약간 이해할 것도 같았습니다.

이토록 차고 넘치는 기도의 선물을 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더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 또 뵈올 날을 그리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버클리에서 류수사가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