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한국진출 50년 발자취
관구장 채준호 신부를 비롯한 관구 관계자들이 9월 2일 한국 관구 간판을 달고 있다.

교육과 영적양성에 힘쏟아
서강대 설립 인재양성 기틀 닦아
도시빈민·농민 위한 사도직 실천

1955년 「가톨릭 청년들의 고등교육과 영적 양성」이라는 한국 교회 요청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한 예수회는 6.25 전쟁 후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유래가 없을 만큼 급속하게 발전한 한국 사회 속에서 교육, 영성, 사회정의, 해외 선교 활동 등 각 시기마다 필요한 사도직을 수행하며 50개 성상을 한국 교회 사회와 함께 해 왔다.

1953년 전후 한국 교회가 파악한 가장 긴급한 사안이 교육 사도직이었고, 그 제안으로 한국을 찾았던 예수회는 1960년 서강대학교 설립과 함께 1961년부터 1969년까지는 광주 대건신학대학을 위탁운영, 당시 한국교회 주교단의 소망대로 고등교육기관을 통한 인재 배출의 터를 닦는 한편 사제 양성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진행되던 1960년대 들어서는 「개발 위주」의 사회 현상 속에 소외돼 가던 노동자 인권 문제에 눈을 돌려 「산업문제 연구소」(1966년)를 서강대 내에 설립, 노동 현장의 인권 유린에 적극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한국 사회 안에서의 예수회 사회 사도직 첫 출발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 계속해서 이어진 경제성장 일변도의 상황 안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도시빈민 증가 현상이 발생하자 예수회는 도시빈민 사도직과 이냐시오 야학을 시작했으며, 예수회 전통적 사도직중 하나인 피정의 집을 수원에 개원하면서 영성 사도직의 기틀도 마련했다.

1980년대는 인력부족으로 새로운 사도직이 시작되기보다 한국 예수회원들의 양성이 주도적으로 이뤄졌다 할 수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한국인 첫 지부장이 탄생하고 지부에서 독립지구로 설정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드러냈다.

민간정부 출범과 함께 사회적으로도 분위기가 안정을 잡아가던 1990년대는 예수회 사도직도 다양성을 보이는 시기였다. 경제 발전은 가속화되면서도 가난의 그늘은 더 깊어가는 현상이 늘어가면서 예수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도직을 보다 구체적으로 시도했다.

「한몸 공동체」(사회사도직 공동체), 「새 샘터」(약물중독 청소년 재활센터), 「사랑의 성모공동체」(소외노인시설) 등이 설립됐고 도시화에 떠밀린 농민들을 위해 누룩 공동체도 시작됐다. 또 물질만능주의에 밀려 영적 빈곤 현상이 늘어가는 세태에 답하기 위해 「이냐시오영성연구소」와 「예수회 영성 연수원」을 열었고 「말씀의 집」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영성사도직을 확충했다.

한국인 회원들의 양성이 늘어나면서 2000년대는 보다 풍부해진 인적 자원으로 기존 사도직이 보강되는 한편 지방으로의 사도직 발길이 확대됐고 해외 선교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교구 및 수도회들과의 협력 사도직이 시도되는 한편 한국 사회 안에 점차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도 동참, 「이웃살이-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양성을 마친 회원들이 점차 증가하고 인적 자원 면에서도 사도직 다양화의 바탕이 형성되면서 예수회는 2001년 11월 사도직 전망을 구체화 하기 위해 「예수회 미래 기획위원회」를 구성하고 예수회 한국 지구의 현주소 분석과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이 위원회는 2004년 사도직 기획위원회 발족으로 통합됐다.

이같은 예수회의 활동에 대해 관계자들은 『사회변화에 맞추어 사도적 적응성을 갖고 그 시대와 사회 필요에 응답하는 작업을 해왔다』고 정리하면서 『한국 사회의 빠른 시대 변화가 예수회로 하여금 더욱 사도적 적응성과 유연성을 띠고 사회에 응답하는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밝힌다.

덧붙여 「국제성과 평신도들과의 협력」을 한국 예수회가 보여준 또 하나의 특징으로 소개한 한 수도회 관계자는 『서강대가 단시일내에 우수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는 「평신도와 비가톨릭인과의 협력」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사도직 분야에서 한국 예수회가 미진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북한 사도직」이 꼽힌다. 1984년 한국 지부를 위스칸신 관구로부터 독립지구로 선포한 교령에는 예수회 한국 지구의 관할 구역이 한반도 전체로 선언됐는데 아직까지 북한사도직을 위해 구체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해외 선교와 함께 앞으로 한국 관구가 투신해야할 중요 화두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예수회 한국 관구는 현재 수련자 15명 평수사 3명 연학수사 38명 신부 91명이 회원으로 소속돼 있다.


■“아시아 교회 안에서 한국관구 역할 기대”
예수회 총장 피터 한스 콜벤바흐 신부


『한국은 매우 영웅적인 나라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 여러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패기를 지니고 있고 또 그러한 고난을 이겨낸 열정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면에서 존경을 드립니다. 관구로 승격된 한국 예수회 역시 역동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예수회의 진출 50주년과 관구 승격 기념행사 참석차 내한한 피터 한스 콜벤바흐(Peter-Hans Kolvenbach) 예수회 총장 신부는 『50년의 세월동안 한국의 예수회원들은 150명 가까이 늘어나는 등 수적인 면에서도 괄목할 성장을 보여주었고, 또 영성 선교 사회 분야 안에서 사도직 활동을 시도해왔다』면서 『한국에서 예수회 역사를 시작한 초기 회원들과 그들을 초청해주고 환영해주고 도움을 주었던 모든 이들, 또 지금껏 우리의 소명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이번 행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지난 1983년 총장에 선출된 후 네 번째 한국 방문인 그는 한국 예수회의 관구 승격과 관련 『삼천년기 교회 안에서 아시아 교회 역할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관구의 탄생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면서 『앞으로 한국 관구는 수도회 안에서도 또 한국 사회 교회 및 세계 교회 안에서 더욱 다양한 사도직을 펼치며 소임을 다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관구는 명실공히 총장이 소집하는 수도회 최고 권위의 총회 참석 「권리」 지닌다는 면에서 그만큼 한국 예수회는 앞으로 보다 역동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의 경우 단지 회의 소집자 초청에 의해서만 총회 참석이 가능하다는 것.

2만명 회원에 달하는 예수회는 현재 가장 큰 남자수도회로 꼽힌다. 콜벤바흐 총장은 그러나 『전체 수도회들에 비교할 때 아직 이 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예수회의 사도직은 교회가 요청하는 바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 전제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영적이고 사도적인 일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동으로 보여 주셨던 사회 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들과 세상 모든 이들에 대한 열린 자세와 대화』라고 밝혔다.

「회원 양성의 증대, 종교간 대화 안에서의 복음적 정의 증진, 사도직의 신학적 성찰작업 강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영적 사회적 요청의 식별과 응답, 아시아 선교 증진」 등을 특별히 한국 예수회원들에게 당부한 콜벤바흐 총장은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는 『항상 성체 안에 하나 되어 생활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1928년 네덜란드 드루텐에서 출생한 콜벤바흐 총장은 1948년 예수회 입회 후 1961년 사제로 서품됐다.


■“쇄신 위해 마음의 문 열어야”
한국 관구장 채준호 신부


「개인 공동체 사도직별 영적쇄신」 「다음의 반세기를 위한 도약」.
지난 2000년부터 4년 가까이 한국 예수회의 수장을 맡고 있는 관구장 채준호 신부는 한국 예수회의 50주년 의미를 두가지로 꼽았다.

『이냐시오 성인께서 회심하고 영신수련을 거쳐 그 결과로 하느님을 위한 일에 나섰던 것을 새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회원들이 50주년 프로그램을 따르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고 그같은 원래의 정신을 개인적으로 공동체별로 또 사도직별로 가다듬어 보는 시간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채신부는 영적쇄신 작업과 함께 『「지난 50년동안 한국 예수회가 어디에 있었던가」하는 물음도 무엇보다 진지하게 시도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50년을 맞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라고 봅니다. 예수회가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지만 이제는 선교사 요청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제2기를 향한 도약을 위해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50주년을 기해 「영적 사도직」 「사회 사도직」에 좀 더 앞장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밝힌 채신부는 회원들에게 『쇄신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쇄신하도록 마음을 열어 주는 것이라 할 때 그에 대한 개방된 마음을 갖도록 하느님 앞에서 자주 시간 갖기를 권한다』고 당부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도움 주심에 감사하며 부족함이 많지만 앞으로도 예수회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 달라』고 전했다.

 

■'세상의 등불' 반세기 - 예수회 한국진출 50주년 관구 승격미사
   아시아 및 세계 복음화에 큰 역할 기대

한국 진출 50주년의 해를 맞고 있는 예수회 한국 관구(관구장=채준호 신부)가 9월1일 오후 4시 30분 서강대학교에서 <한국 진출 50주년 관구 승격 기념미사>를 통해 관구 승격을 공식 선포했다.

1955년 한국에 진출, 서강대학교 설립을 비롯 교육 영성 선교 사회사도직 분야에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를 모토로 구현해온 예수회 한국 관구는 이로써 명실공히 예수회 내 독립 관구로서 아시아 및 세계 복음화를 향한 보다 견실한 몫을 담당하게 됐다.

지난  1985년 지구 독립 후 20년만에 이루어진 한국 예수회의 관구 승격은 진출 50주년을 맞아 150명에 이르는 회원수의 증가 및 다양한 사도직을 통해 한국땅에 뿌리 내려진 성장의 결실로 풀이되고 있다.

이날 기념미사는 서울 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주례한 가운데 한국 주교단과 예수회 회원을 비롯 1500여명이 함께 했다.

미사중 관구 승격 메세지를 발표한 피터 한스 콜벤바흐 예수회 총장 신부는 『한국 교회안에서 예수회 사도직의 발전과 진보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손길을 살펴볼 수 있다』면서 『50주년을 맞아 공식적으로 한국 관구를 설립하면서 보다 더 결실있는 교회 봉사와 투신이 깊이를 더할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정진석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50주년과 함꼐 관구로 새로워진 한국 예수회원들은 앞으로도 진리에 순종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세상의 등불이 되는 노력을 계속하기 바란다 고 말했다.

또 축사에 나선 김수환 추기경은 예수회 한국 관구가 50주년이라는 역사속에 150명 가까운 회원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향기가 하느님의 무언가를 닮고 있었기 때문일 것 이라며 계속해서 복음적인 삶을 보여주고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한 예수님의 삶을 따르며 살아가길 청한다고 밝혔다.

특별히 이날 미사에서는 정무근 류시찬 신부등 9명 회원의 최종서원식이 이었다. 최종서원은 청빈 정결 순명 3대 장엄서원과 함께 교황의 선교 파견에 대하여 온전히 순명하는 서원을 말한다.

한편 미사에 앞서 오후 2시부터는 서강대학교 이냐시오 강당에서 <활동중 관상> 을 주제로 심종혁 송봉모 신부의 <한국진출 50주년 관구 승격> 특별 영성 강연회가 마련됐다.

한국 관구는 지난해 11월28일부터 50주년 기념 기간을 지내고 있으며 회원들은 전체 피정, 한국 예수회 비전 마련을 위한 워크숍등 내부 행사를 가져왔고 50년사도 발간했다.

<이주연 기자>miki@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