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구정모 신부 / 예수회




저희 아버지께서 지난 3월 10일에 향년 74세로 귀천하셨습니다.

1998년 늦봄에 뇌졸중으로 대수술을 받은 후 만 7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회복된 후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이 계속되었고,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가족의 안타까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생을 신앙과 땅만을 벗 삼아서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사일이 힘들 때마다 한잔 두잔 하던 것이 습관이 되고 급기야은 알코올중독으로 발전되고야 말았습니다.

병상에서 회복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가족 모두를 실망과 슬픔에 빠트렸습니다. 강제로 끊게 하려고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하였으나, 그때만 빤짝하고 퇴원하시면 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술에 중독이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정신적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된 그 즈음의 일기에서 술을 끊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삼위 일체)
 


“주님, 이 몸을 생각하여 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님, 주독으로 헤매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금주할 일, 참으로 큰 문제”
“금주한 날” “금주 삼일 째”
“참으로 고되고 억센 운명이구나.”
“주님, 이 죄인을 빨리 데려가소서. 이 못난 인간 더 이상 존속하기 부끄럽습니다.”


외국생활 때문에 멀리서 지켜드릴 수밖에 없던 제 마음은 늘 불안하고 답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 특별 청원기도도 많이 드렸는데, 기도의 응답이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일년에 한두 번 방학 때마다 찾아뵐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기력이 약해지고 의식이 혼미해져가는 중에도 막내아들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하신 아버지,
명예나 인정보다는 가난과 굴욕 속에서 살아오신 아버지, 건강보다 병으로 고생하신 아버지가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지금의 자신이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의 신앙과 진실을 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가난 그대로이셨던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외적으로 칭송받을 만큼 성공하거나 명예를 떨친 분이셨다면,
그리고 알코올 중독 등으로 깊은 고뇌의 계곡을 걸어본 분이 아니셨다면, 저도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의
내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절실히 기도드릴 수 있었던 일들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응답을 내 욕심대로 들어 주시기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하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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