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요셉)  보좌 신부님을 환영합니다!

5월 11일 8시30분 저녁미사후 신부님 환영식이 있습니다.

CLC 회원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신부님이 1998년, 수사 시절에 쓰신 글을 예수회 홈 페이지에서 발췌해 왔습니다.

 

 

   말씀 / 좁은 문

최성영 수사 / 예수회

오늘 예수께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바로 모든 인간 실존의 궁극적인 문제이며 인간 삶의 최종적인 목표인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구원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문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예수는 우리가 선 택할 문이, 넘나드는데 아무것도 걸리적거리지 않는 넓은 문도 아니요, 나의 조그만 수고도 필요 없이 스스로 열고 닫히는 자동문도 아닌, 좁은 문을 제시하고 계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은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이리로 넘나들기 위해 어느 지점에 위치한 물리적인 칸막이를 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문은 이러한 물리적인 문이 아 니라 삶의 방법에 있어서의 선택의 문,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양식으로서, 들어가 생생 하게 살아가는 삶의 문을 말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왜 그분은 삶의 선택에 있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좁은 문으로 들어갔던 선인들은 어떤 삶의 길을 걸어갔을까?

캘커타의 습습한 길바닥에서 가난을 통째로 살았던 데레사 수녀, 옷 한 벌에 무애의 삶을 살았던 성철 스님, 불행했던 과거 이 나라의 불의와 악에 저항하며 몸을 불살랐던 사람 사람들. 하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삶이 어디 이런 큰 삶뿐이겠는가?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작고 연약한 생명들을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 끊임없이 자신을 쪼개어 나누며 사는 사람들, 돈도 낳지 못하는 인권영화를 만든다고 버둥대는 ○○영상 사람들, 굶어 죽어 가는 북한 식구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 몇 날째 물통 속에 갇혀있던 이들을 위해 하나 뿐인 바가지와 마른 이불을 들고 달려가는 사람들… 비록 그들의 삶이 이 사회에서 꼴찌로 보이고 작게 보일지 라도 하느님의 나라(구원의 상태)에서는 첫째가 되고 크게 보이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이 길은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의지와 이권에서 멀리 떨어지는'(영신수련, #189)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로부터 떨어질수록 본연의 참된 자기로 가까이 가는 길이며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참사람의 길일 것이다. 또한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어떤 커다란 이상을 설정하고 눈에 보이는 상대와 싸우는 삶 보다는 자잘한 일상 안에서 내가 걸려 넘어지고 부자유하게 묶여 있는 것들을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며 나를 정화시켜나는 일과 순수한 지향(pure intention)으로 작고 힘없는 생명들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뻗어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들 가자하여, 좁은 문을 나섰을 때 우리는 크고 넓어진 자신의 마음뜰을 보게 될 것이고, 상처입고 삐뚤린 이 사회 를 변혁시키는 잔잔한 주체로서 올곧게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좁은 문, 그 문은 예수가 들어섰던 문이며 우리가 들어서야 할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