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지난밤 잘 주무시고  내드린 숙제도 잘 마치셨는지요?
앞으로의 강의 동안은  피정을 하러 오신 여러분께 기도란 무엇인가하고 질문해 보게 될것입니다. 또한 이 피정을 주도하는 우리의 사부이신 성이냐시오는 누구이신가를 잠깐 살피는 시간도 갖도록 할 것입니다.

그토록 갈망하고 배우기 원하는 기도, 기도…하는데 과연 기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여러 희생을 마다않고 이곳에 오신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기도를 하고싶고 배우고 싶고 더욱 알고 싶어서 이곳에 오셨을겁니다.

저는 기도란 그리 거창한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자질구레한 그리고 사소한 것들을 주어 모으는 작업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 따로 삶따로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내 소소한 삶안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찾고 정리하며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는것. 그것이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도를 꼭 해야합니까? 마음의 평화를 찾고 정리하며 고요함을 되찾는다. 네 모두 맞습니다. 원래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모습을 찾는 작업이라 할수 있겠죠. 그런데 기도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고 바쁜 일상에 젖어버려 본래 기도하도록 되어있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려고 침잠 상태가 되면 몹시 힘들어 합니다. 그러기에 다시 본래 모습을 찾기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 훈련. 그것이 영신수련의 일부 모습이라 할수 있을겁니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지도록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오늘 제 1독서 신명기 30장 15절에서 20절의 말씀을 잠시 살펴보면, 생명과 죽음을 언급합니다. 두가지를 내놓으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내영혼은  무엇을 갈망하며 선택하기를 원합니까? 선택의 문제가 나왔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게 됩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는 이러한 선택의 문제를 식별이라는 말과 연결시킵니다. 올바른 선택과 그 삶을 위해 일상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택하여야 할것인가를 식별하여 선택하는 훈련 또한 기도와 더불어 갖게 됩니다. 또 그것은 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모습대로 지어내셨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애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죠. 그 대목을 묵상하다보면, 내가치와 존재를 발견하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자인지를 기억해 냅니다. 참 아름다운 말씀이라 하겠죠.

그렇듯 나의 뿌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고 그분을 닮은 나 자신을 위해 배려하며 자신의 존재의 귀중함을 떠올리는 시간이 바로 기도하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영신수련’  1번에서는 삶을 개선하고 양심을 살리며 하느님의 뜻을 찾기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21번에서는 수련의 목적을 생활을 정리하기 위하여 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신수련 1번>
1. 첫째: 여기서 영신수련이라 함은 양심을 살피는 방법이나 묵상, 관상, 염경, 묵도 등의 방식 및 다음에 말할 다른 영신적 행사들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즉 마치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산책이나 길걷기나 뛰기 따위의 모든 것을 체육 또는 신체의 단련이라고 하듯이, 영신면에서도 모든 사욕편정을 깨끗이 없애고 구령을 위하여 자기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 날카로운 양심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기 위하여 영혼을 준비하고, 이에 대비하는 모든 방법을 영신수련이라고 한다.
      
<영신수련 21번>
21. 영신수련의 목적은, 사람이 아무런 사욕편정에도 좌우됨이 없이 자기를 이기고 자기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는 내가 왜 영신수련을 하러 왔는가? 라는 질문앞에 위의 두가지 기준을 가지고 살펴보면 좋을듯 합니다.

예수님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듯 함께 그분과 나눌수 있도록 노력하고,  우리자신을 위하여 이곳에 우리를 보내준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합시다.

그럼 이 영신수련을 만드신 성이냐시오는 어떤 인물이였는지 그분의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분은 1491년 스페인 북부 바스크의 료욜라 성에서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용감무쌍하고 강인한 정신과 자질을 지녔던 그는 군인이됩니다. 그러나  20대초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게 되고,  그 부상을 계기로 집에서 요양중 ‘그리스도전’과 ‘성인열전’ 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어 두권의 책을 독파해 나가면서 마음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향들을 품게 됩니다.

투병생활이 그를 더욱 강인하게 했고 타고났던 소질인 카리스마가 더욱 키워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영의 분별을 터득하고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두가지 다른 영의 느낌을 알아차게 되는 데, 선으로 부터 오는 것과 악으로 부터 오는것입니다. 우리가 영신의 삶을 사는데에도 이와 같은 적용이 생깁니다. 내 마음의 상태를 구별하고 생각할 줄 알게 되며 영의 식별을 하기 시작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되지요.

이냐시오 성인은  읽었던 책을 필사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필사한다는 행위. 즉  사람이 쓴다는 의미는 생각과 정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서를 읽고 쓰면서 느낌을 정리해 보는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 할수 있겠죠. 여러분도 필사하는 작업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등으로 말씀을 구분하여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느낌들을 정리해 나간것이죠.

성인은 어느순간 자신에게 커다란 위로의 순간을 갖기도 했는데 특히, 자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 같습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자신의 신원에 대해 그리고 영원한 하느님이 왜 나를 이순간 이곳에 있도록 하였을까 하고 자문하며 의미를 찾고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세적인 기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순례자로서의 삶을 결심하게 된것이죠.

그 당시 순례자의 삶이란 시기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과감한 결단없이는 선택하기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당시 이냐시오 성인의 회심시기에 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로코코 양식에 금칠을 하던 교회의 부패적 분위기로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이냐시오 성인은 그 당시 은수자들처럼 교회를 등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교회 아픔을 껴안음으로써 교회의 쇄신을 위해 영신수련을 보급하고 예수회를 창립하여 예수님과 함께 일생을 함께하는 순례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여기서 영신수련이라 함은 단지 예수회만의 영성이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그곳은 모태와 같은 곳이지만 우리 가톨릭 교회에 퍼져있는 모든 이냐시언적인 영성을 포함한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순례 첫 장소로서 몽세라트에서 성인은 블랙마돈나에게 지금까지 움켜잡고 있던 현세의 삶과 앞으로 순례자로서의 삶을 위한 정결을 봉헌하는 의미로 갖고있던 검들을 받칩니다. 그리고 동굴이 있는 만레사 라는 곳에서 1년간 기도와 고행, 탁발생활을 통해 회심과 정화, 그리고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영신수련의 기본틀이 마련되었고 이곳은 이냐시오 성인의 신앙의 학교라고 할수 있을 만큼 많은 훈련을 하셨던 곳입니다.

그곳을 여행하게 될 분들이 계시면 꼭 한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만레사는 유난히 자연 동굴들이 많아서 은수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나 기도하는 자에게 훌륭한 장소였다고 보여집니다. 오래전부터 전통이 있는 지역이였나 봅니다.  

그곳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떠오르는 영을 실험하고 훈련하여 구별해내는 삶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들에 대한 식별을 더 확고히 하여 자신을 닦아가는 과정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경험을 토대로한 영신수련이고 쓰게 된 동기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많은 영들에 시달리는 영혼을 구령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이 정도로 이냐시오 성인에대한 발자취는 마무리하도록 하고, 기회가 있으시면 자서전을 읽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기도연습은 마음의 영을 구별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기도안에서 이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왜 수세기 전부터 인간역사안에서 침묵과 고독을 선택하는가? 그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고 생각되며 지금까지도 의미가 상쇄되지 않고 면면히 내려오는것을 잘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갈망을 찾기위해 침묵은 도움이 됩니다. 찾는 그것에 집중하기 위해 말을 삼가하는것입니다. 우리안에 잠재능력을 가치있게 끌어올리는 작업이 침묵으로 인해 도움을 받게 되는것입니다. 침묵안에서 깊이 들어가는것. 그것은 바로 반복하여 독서하고 음미하며 머물고 젖어가도록 하는 과정으로써 영신수련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단순한 것을 반복하고 심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기도와 대화를 위해 여러가지 심층적인 학문들, 신학 철학 심리학 등을 총 망라하여 도움을 받지만 궁극적인것은 단순함에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일러두기 10가지를 잘 읽고 단물을 뽑아 낼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세요.  매번 기도때마다 십자고상앞에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존경과 감사를 떠올리면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봅니다.

어저께도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관리를 잘하셔서 마음을 침잠하고 편안하게 하는것은 좋으나 하루 네번의 기도는 꼭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봉사자들을 통해 배운 기도방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틀안에서 제가 짚어드린것들을 참조하면서 우리 안의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내려는 노력을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잠시 피정을 하는 이에 태도에 관하여 짚고 넘어가지요.
책 영신수련의 5번에서는 피정하는이의 태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피정하는 이는 자신의 창조주에 대하여 관대하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피정을 시작하는 동시에, 자신의 모든 욕망과 자유를 하느님께 바쳐서,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자신과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당신의 거룩하신 뜻대로 안배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크게 유익하다.
  
제가 이 태도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여러분이 많은 이론과 설명과 도움을 받아 기도한다하더라도 하느님과 또 나의 영혼을 도우려는 봉사자에게 얼마나 제대로 개방하는가에 따라 그 열매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하느님앞에 정직하게 나를 맡기고 봉사자에게 자신을 당당히 개방할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실수 있습니다. 시간이 나실때 마다 이 영신수련을 하는 자의 태도에 대한 묵상을 아울려 해보십시오.

오늘 기도 성경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2절 그리고 4절까지 말씀과 에페소서 1장 3절에서 14절까지 말씀 그리고 요한1장 1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밤 주무시기전에는 루가복음 1장 26절에서 38절까지를 읽고 주무시구요. 그리고 마지막 창세기 22장에서 1절부터 19절까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실 복음마다 묵상이나 관상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이번 제가 내드린 창세기는 관상을 하기에 참 좋은 말씀 소재입니다. 이세상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하느님과 꼭 담화를 하시가 바랍니다. 이냐시오식 기도에서는 성모님,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과 세번의 담화를 하게 되어있는데 이번 창세기는 하느님과 한번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에페소서는 자꾸 반복 묵상하면서 이야기를 음미하도록 하고 요한복음은 읽고 음미하면서 전체적인 묵상을 하도록 권합니다. 그런후 하실수 있다면 구체적인 상황안으로 들어가 직접대화도 해보는 관상도 시도해 보시도록 하세요. 루가복음은 묵상과 관상 동시에 할수 있는 복음입니다.  마침기도로는 감사의 기도나 주의기도로 마치시면 됩니다. 1시간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꼭 채우도록 하세요. 사실 4박5일은 우리의 수련이 무르익기에는  짧은일정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나마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고 한장소에서 자세를 고정시켜 머무르는 훈련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럼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고 마침기도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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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미사강의

오늘 독서를 읽으면서 영혼을 보살핀다는 것이, 마음을 서로 살펴준다는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영신수련의 삶.  곧 예수회를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물음과 연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늦게 성소를 깨닫고 사제의 길을 선택했는데 처음에는 일반 교구로 들어갔었습니다. 성소를 알고 부르심에 응하게 된데에는 어렸을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영향과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데미안같은 책들, 좋은 독서들은 저를 많이 성장시켜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성인전들을 읽으며 많이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점은 이냐시오 성인과 비슷하지요? (웃음)  특히 신비로운 부분을 부각시켰던 돈보스코 성인전, 삶의 경험을 철저히 헤짚어 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여준 이냐시오 자서전,등이 기억에 남는군요. 그당시 저는 예수회가 있는지도 몰랐었지요. 1년간 교구에서 신부공부를 하며 누군가에게 영적지도를 못받는다는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교구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고 제가 있던 때와는 많이 다르리라 짐작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루어져야 한다는 느낌과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확신이 저를 예수회에 문을 두드리게 했습니다. 예수회에 들어 온 후의  삶은 후회없는 감사와 사랑의 시간들입니다.

영신적인 삶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의식화하는 삶입니다. 희망의 유무는 큰차이가 납니다.  영신수련 2번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와 봉사자 사이에 성령이 물결치듯 이끌어 지듯이 온전히 보살핌을 받을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십시오.

<영신수련 2번 둘째: 묵상 또는 관상의 방법과 순서를 남에게 전달하는 이는 관상이나 묵상을 할 역사적 자료를 간단하게 요약해서 충실히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면 묵상하는 이는 사적의 요점을 취해서 스스로 그것을 생각하고 궁리하여, 인간적 추리에 의하든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든지 간에, 사적을 좀더 명백히 또 깊이 알아듣게 하는 그 무엇을 발견함으로써 피정 지도자가 직접 사적의 내용을 길게 해명하여 주었을 때 더욱더 깊은 감명과 더 큰 영신적 효과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사람들은 대화나 표현하는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말을 함으로써 자기가 정리가 되고 이론이 확신이 생기며 정립됩니다. 오늘 신명기에서의 선택이라는 말처럼 자기 능력으로 이웃을 끌어주도록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하여야 겠습니다. 루가 복음말씀처럼 "나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져라. 나를 위해 목숨을 잃으면 살리라" 하셨던 것처럼 나를 개방하는 모습을, 나를 버리는 것의 시작으로 여기십시오. 내마음을 폐쇠한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 시작의 중요 시발점이 그것임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