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2월9일 (첫째날)
오랜 신앙인으로 50년을 넘게 개신교에 몸담았던 내가 난생 처음, 이곳 천주교의 침묵피정에 왔다.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라는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각자 소개를 한후 2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드디어 나만의 '대 침묵'으로 돌입했다.
TV 와 음악과 전화가 없는 4박5일이 너무 답답하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말이 생각날 만큼 이곳은 무척 조용하다.
책상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니 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난다. 영화를 보았던 생각도 나고...
그 고통이 와닿아서 마음끝이 찡하다.

+ 2005년 2월10일 (둘째날)
주어진 성경귀절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를 했다.
여기서 말씀하신 4시간의 기도는 아직은 내게 많이 부담스럽다.
우리의 삶은 식별과 선택이라는 신부님의 강론에 깊은 공감을 가졌다.
기도는 우리의 분별력을 키우는데 커다란 뿌리가 된다고 생각됐다. 
그 기도를 그동안 나는 게을리 했고 또, 그 의미도 잘 모르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 2005년 2월11일 (세째날)
하늘은 아주 맑으나 매우 쌀쌀한 날씨였다.
마치 대입시험을 앞둔 고3 학생들처럼 먹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하루였다.
저녁 만찬미사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참석한 피정자들의 발을 신부님이 씻겨 주셨다. 내발까지도!
처음엔 사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든데
그러면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게된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나 발을 맡겼다.
신부님이 행하시는 동안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신앙관이 그리고 내자신이 모두 박살나는 느낌이 들었다.
발을 씻겨 주시는 분이 꼭 주님같았으며 내가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말씀을 실제로 보여주시는 것 같았다.
만찬미사 시간 내내 나는 많이 울었고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가 죄인중에 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이제는 정말 무릎을 꿇어야만 될 것 같다.

+ 2005년 2월12일 (네째날)
어제 저녁에는 늦게 까지 잠들지 못하였다.
지난밤 내게 벌어졌던 일은 평생을 두고 못 잊을것 같다.
그냥 그렇게 주님이 내곁에 오셨다. 내 안에 계셨다. 그밤에....

+ 2005년 2월13일 (다섯째 날)
상처를 하나의 은총으로 생각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치유되지 않을 상처가 없고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이 곧 예수님을 닮게 사는 삶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구구절절하다.
마지막 미사때 말씀처럼, 붕뜨지 말고 잘 정리해서 기도를 일상속에서 반복하도록 해야겠다.
이제 나는 여기를 떠나는데 이곳에서 나는 내생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만난것은 큰 축복과 은혜라고 생각한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피정으로 초대해 주신 하느님과
많은 영적 도움을 주시고 참여하도록 허락하신 신부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