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의 수요일이자  2005년이 시작되는 구정. 음력설이자  영신수련 첫날입니다. 이 피정집에 모이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여러분들을 기쁨으로 맞으며 새해 첫날에 그것도 사순시기 시작과 더불어 이러한 침묵피정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무척 의미있게 느끼며 좋은 시작이라 여깁니다.

오늘은 단식과 금육을 해야 하는 날인데 모두들 지키셨는지요? 단식이라하는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단지 음식물 섭취에 대한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보이는 작업, 즉 눈에 띄는 봉헌을 드림으로 하느님 현존을 재삼 확인하는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대 우리들은 간직하는것 보다는 토해내는데 익숙해 져 있습니다. 밷어낼 필요가 없는 경우에 조차도 밷어내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음식뿐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은 우리가 오늘 행해야하는 단식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집니다.

저희 아틀란타 본당에서 있었던 관면혼배가 생각납니다. 나이가 70에 가까운 두분이 아들 며느리의 관면 혼배성사를 부탁해 오셨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그 분들이 굳이 자식들이 이미 치른 혼례를 하느님 앞에서 새롭게 다지시려는 모습을 보았지요. 그것은 가톨릭이라는 전통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의식이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의 양식에서 전통과 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틀 안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지식한면을 부정적으로 보며 가치가 있지 않는것으로 다룰 수도 있겠으나 전통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뿌리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전통은 다시 짚어봐야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내 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정을 맞아 첫날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재의 예식 역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의 예식 역시, 가톨릭의 오랜 전통입니다. 왜 나무를 태워 바르는 의식을 매 해마다 되풀이 하는지요? 그것은 본래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참회의 의미, 보속의 의미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울타리안에 돌아옴, 하느님 품으로 회귀하도록 결심하는것을 말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상처를 주고 받았던 내 죄의 모습을 의식하며, 궁극적으로  필요하고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각성입니다. 그런후 우리는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결국, 하느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참회, 보속 뿐아니라 재의 예식은 하느님은 역시 ‘사랑이시기도 하다’ 는것을 알려줍니다. 앞으로 재의 모습으로 밖에 남지 않을 나를, 당신 나라로 초대하시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피정의 시작이 참 여러가지 은총안에 시작됨을 상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느껴지지 않는 하느님을 볼수 있고 느낄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를 연구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은 늘 한결같지만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천양지차가 납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피정은 스스로가 성령이 이끌어주시는데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도신부나 봉사자는 다만, 여러분이 길을 가는데 참여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지 피정을 시켜드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께 의지하며 인도를 받아 여러분 스스로가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가장 중요한것은 ‘성실함’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잘 안되더라도 꾸준히 정해진 1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복음말씀에 머무르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성실하게 피정을 꾸려나가보록 하십시오. 성실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피정동안의 계획이나 주의 사항들을 짚어드리겠습니다.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은 침묵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이곳에서 침묵의 의미는 단지 말을 하지 않는 단계에서만 끝나는것이 아니라 서로 피정집에서 피정자들간에 눈이 마주쳐도 서로가 피해주는 등, 가급적이면 내적 침묵까지도  유지 할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급하게 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있다면 봉사자들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피정집에 들어온 이상 세상 밖을 떠나있는 자로서의 태도를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갖고오신 Cell Phone 등은 봉사자들에게 자진 반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허락없이 피정집 외부로 외출하는 일은 삼가해 주십시오. 특히 피정집 주변이 방대하고 경치가 무척 좋지만 산책을 멀리 나가신다면 두분씩 짝을 지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미사시간, 강의, 식사시간, 체조시간, 면담, 고백성사, 등의 정해진 스케쥴 외에 자신이 관리해 나가야 하는 시간이 많을겁니다. 그시간을 유용하게 쓸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오늘 밤 계획을 잘 세워 그것대로 진행하고 지켜나가도록 하십시오. 긴장을 풀고 모든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자세로 마음을 가볍게 만드십시오. 오늘은 첫날이니 너무 무거운 분위기에서 억지로 침묵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죠? (웃음)  

내일부터 하루에 4번을 1시간씩 기도하고 묵상하도록 숙제를 드립니다. 너무 많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까 말씀드린데로 성실함으로 이겨나가 보십시오. 개인의 특성에 맞게 그리고 전체 피정 계획에도 무리없이 따라 갈수 있도록  시간표를 잘 짜서 알찬 피정을 하시길 권합니다.

이 미사 강의가 끝나는데로 주무시기 15분에서 30분전에 이사야서 43장 1절에서 7절 그리고 시편 139편을 깊이 묵상하시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침묵피정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시편이나 이사야서를 다시 읽어봅니다. 성서 봉독후에는 가벼운 아침 산책이나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밤에 주무시기전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성경구절의 Reflection 과 지금 읽은 복음의 느낌을 통합하여 묵상해 보시기 랍니다. 그리고 이 피정에서 청해야 할 은총을 살펴보고 성령님께 힘을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지난 영신수련부터 지금까지 은혜에 감사하고 바쁨중에도  피정에 들어올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봅니다.) 본격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잠시, 여기서 청하는 은총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좋은 의향을 추구하라” 하시고 “원해야 할 것을 원하라” “원하는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원의 즉, 청하는 은총과 구하는것이 무엇인지 아는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예수님이 이 시간 내게 오실수 있도록 초대하고  그분이 나를 초대하신다는 의미를 잘 파악하셔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청할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게 바라는것을 잘 아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예수님을 위한 만찬을 제대로 준비 할 수 있도록 기도 하셔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말입니다. 주님 성지가지를 들고 환호하던 군중처럼 자기의 편의대로 기뻐만 하지 말고 그분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잘 살피셔야 할겁니다.    

나머지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있어서의 기도법은 각 담당  봉사자들이  설명을 해 주실겁니다.  지금부터 조편성을 발표하고 조별로 간단한 모임과 면담스케줄을 만드시는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모두들 좋은 피정이 될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