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5.침묵 피정이 시작되는 날이다.비록 마음 내켜 가는 피정은 아니지만,늦어 남에게 피해주기싫어 조금 서둘렀다.하늘은 잔뜩 치푸린 채 시커먼 구름을 낮게 깔고 이따금씩 비를 뿌리고 있었다.마치 내 마음을 알아챘는 지.나는 최근 몇 달 동안 머리가 복잡하고 심란하다.감정의 기복도 무척 심해졌고 항상 화가 끊이질 않는 다. 25년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한다. 가슴 속에는 항상 울분,증오,실망,혐오, 복수심,배신감 등으로 꽉 차있었다. 거기다가 이젠 미래에 대한 불안, 공포,초조함 등으로 뒤 범벅이 돼버렸다.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을 포기한 댓가치곤 너무 상처가 깊고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 지,혹은 자기 때문에 내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데 일조해서인 지 아내는 내게 침묵 피정 참가를 권했다.
왜 해필 침묵 피정이야,그리고 뭐 4박 5일안?"안간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은 했지만 그렇다고 뭐 뾰족한 일도 없고 해서 그나마 마감후 신청을 받아줘 가게된 것이다. 가뜩이나 음산하고 을씨년 스러운 날씨는 이런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Day 1 저녁.
간단한 자기 소개와 기도 하는 법 등 간단한 Orientation를 낸 후, 숙제를 받아가지고 각자 해산.이제부턴 절대 침묵.긴장감이 감돈다. 잘 끝낼 수 있을런 지 걱정이 앞선다.마음이 산란해진다. 주위에는 무거운 적막이 흐른다. 눈을 감고 있다보니 다시 내 마음 저 아래 밑에서 잠시 숨어있던 화가 고개를 내민다.이왕 내친 김에 하나님께 따졌다.이럴 때 나는 하나님 대신 예수 형님 그런다.그게 보다 가까이 하나님께 다가가서 보다 친밀감을 느낄 수있어서이다.형님,나름대로 형님이 시킨대로 살와 왔다고 생각했는 데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세요? 정말 못 견디겠어요. 내가 제일 미워하는 놈을 위해서까지 기도드리고 할 만큼 다 했는데---.
그리구 성모님한테도 매달렸지만 전혀 기도빨도 않받구,성모님도 나이가 많이들어 귀가 어두어져서 못듣는 겁니까? 정말 계시긴 계신겁니까? 등등을 토해냈드니 마음이 후련해 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내가 심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과제 기도를 하기위해 성서 이사야서 43장 1-7절을 펴서 읽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마치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 같았다. "두려와 말라. 내가 너를 건져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두려와 말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 (I am with you). "난 그날 밤 너무 흥분이 돼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큰 보믈을 발견한 사람처럼. 기도를 드렸다. "Thank you, God. 내 그 말씀을 결코 잊지 않겠나이다.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들과 백수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소--소."

Day 2
아침 식사하려 나갈려고 문을 열다보니 문이 잠겨 열리질 않는다.웬 세상에---. 아무리해도 내 실력으론 끄덕없다.소위 침묵 피정이고 그것도 첫날인데 소리 지룰 수도 없고,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갑자기 Panic상태에 빠진다.어젯 밤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산산히 부서지고 순간 이성을 잃고 우왕 좌왕,간신히 지나가는 사람 인기척을 느껴 S.O.S를 보내 그 자매님(당시는 천사로 느껴짐)이 관리인을(예수) 불러줘 무려 2 시간 반 만에 구조.(완전히 구원 받음을 체험).이냐시오 피정의 집 생긴 이래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니 재수가 지지리 없다는 건지,좋다는 건지 헷갈리지만 신고식를 호되게 치룬 셈.덕분에 어렵게 들어왔으니 좀 제대로 해 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 와중에서도 전 날 밤에 들은 귀절(두려와 말라,내가 너를 도와 준다)을 체험하게된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까?
이날 오후는오랜 만에 혼자 있는 괴로움(?)을 느껴본다. 외톨이가 됐다는 생각,아무도 날 찾지도 않고 도와 줄 수도 없고.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중에 하나인데. 날씨까지 흐려서 그런지 Chatahoochi 강물도 외로움을 타는 것같다. 익숙해져 있는 것과 잠시 이별을 하는 것도 잖지? 산책로를 오고 가면서 요한 복음 1장 1-18절를 묵상해 보았다."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귀절에 멈췄다. 나는 얼마나 인정받기를 갈구해왔나.  마음을 비웠다고 늘상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비우질 못했지. 나를 알아 주지 않으면 쉽게 삐지고, 상처 받고, 빈정거리고.직원들과 회식때도 항상 상석에 앉기를 바랬지. 또 생색내기 좋아하고. 하나님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저에게도 남한테 인정 받으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소서.


Day 3
오늘은 맑고 깨끗한 날씨. 오랜 만에 해를보니 기분이 좋아진다.새 소리,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여기에 덧붙혀 인간과의 어울림.창세기에 나오는 귀절 "참 보시기에 좋았다" 그대로이다.옛날 옛날에도 비슷했겠지. 생명의 은총을 느껴본다. 오늘 묵상중에 베드로 성인이 가슴에 와 닿는다. 누가 복음 5장 1-11절중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 무식하고,성질 급하고, 경솔하고,예수님을 3 번 부인하고 등등해서 평소에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사도잉 줄 알았는 데.오늘 보니 사나이 중에 사나이로 다가온다. 12 사도 가운데 유일하게 처 자식을 가진 사람으로 나오던데, 나는 지나간 과거의 세심한 것 속에서도 헤메고, 아쉬워하고,집착하고울고 불고하는 데 말입니다. 주님,저에게도 베드로 같이 의심치 않고 따르는 믿음과 강인함을 주소소.
저녁 만찬 미사때 서 신부님이 피정 참가자 전원의 발을 씻어 주었다. 한 발씩도 아닌 두발을.신부님 속도 좋으시지! 그 와중에 옆에 옆에 있는 자매분이 훌쩍 훌쩍 우신다. 흐느낌으로 바뀐다. 어, 앞쪽 건너편 자매님도 운다. 와! 나 말고도 마음이 복잡하신 분들도 계시는 구만. 자매님, 우세요, 아니 더 세게 퍼엉펑 우세요. 마음의상처가 다 씻겨 내려갈 수 있도록. 주님, 무슨 슬프고 어려운 사정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저 자매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소서. 통곡의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갔다.

Day 4
산책로는 지난 밤에 뿌린 이슬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아마 성모님이 어제 밤 자매님들 울음에 동참해서 같이 우신 모양이다. 산들 산들 불어오는 바람 속에 몸을 던져본다. 맛이 상큼하다.향긋한 내음.이젠 혼자 있음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자유. 조용함이 갖고 있는 Power와 위대함을 느낀다. 기도 생활이 익숙치 못해 그런 지 조금은 힘이 든다. 마누라와 애들도 보고 싶고. 요한 복음 18장 28-40절, 빌라도가 물어본다. 진리란 무엇인가? 여기 저기 성서 귀절을 찾아봐도 비슷한 설명이 없다.아마 바보 처럼 사는 겐가? 누구 아시는 분 얘기좀 해 주세요.

Day 5
드디어 마지막 날. 뭐든지 간에 끝을 낸 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물론 좋게 끝내야 되겠지만. 아주 높은 산을 등정하고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 별 생각도 없이 온 피정이지만 많은 걸 얻고 간다. 기도의 중요성, 기도

이 피정을 나에게 가게해준  아내 로사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