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이번 영신수련에 참여하셨던 김용주 (안토니오) 회장님의 피정후기 소감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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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얘기지만 1박을 넘는 피정이라곤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당 사목회장이면서도 본당 신부님이 직접 지도하시는 피정이 아틀란타에 있는 피정집에서 열린다는데 가고는 싶어도 가게 일이 바빠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천사의 마음을 타고난 아내가 가게 일을 내 몫까지 기꺼이 맡아 주겠다고 해서 4박5일의 긴 일정 동안 푹 쉬고 올 심산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집에서 15분 정도의 거리를 교통혼잡으로 1시간이나 걸려서 피정집에 도착하니 먼저 접수를 마친 본당의 교우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침묵 피정이라고 해서 방에서는 침묵중에 기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잠시나마 서로 인사도 주고받고 친교를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는데 봉사자들의 설명이 일단 피정이 시작되면 24시간 침묵을 지키고 서로 만나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연습삼아 침묵 해보고 마주치는 교우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여 보았으나 여간 어색하고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5일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유령같은 생활을 지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혼자라는 느낌이 올라왔다. 눈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없으니 나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는,  마치 그림 속의 인물로 생각되었고 심지어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느낌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저녁의 첫날 강의에서, 육신의 몸을 단련하는 체육 훈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도도 훈련에 의해 성장될 수 있다는 내용의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 수련 (Spiritual Exercises)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기도를 돕기위해 또한 그 안에서 기도를 하도록 주어진 성서구절을 몇번 반복해서 읽어 보다가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기도의 개념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면서 일찍 첫날 밤의 잠을 청했다.

이튿날 새벽에 성서구절을 다시 읽고 묵상하면서 창 밖에 보이는 숲속의 나무들과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파리들이 마치 나를 위해 환영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아침 햇살에 어울어져 바람결에 빠르게 움직이는 잎파리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한참 동안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자연과의 교감으로 이처럼 흥분되고 기쁜 마음을 갖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아마도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읽고 분위기가 잡혔었던 모양인데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빨리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어제 피정을 시작하기 전 각자의 소개 시간에 나는 왠지 좋은 시간을 갖게 될 예감이 든다고 했지만, 나 스스로 생각해도 모든 것이 거짓이거나 혹은 자기 최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면담을 해주시는 봉사자에게 나의 경험을 얘기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칭찬을 들었다. 칭찬이라기 보다는 나의 경험을 좋게 설명해주는 말씀이었는데,  사실 그 아침의 황홀한 기분을 역시나 분심으로 하루 전체를 말아 먹게 되었다. 새로 받은 성서구절을 읽어도 묵상하려해도 기도의 시간을 청해도 종일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분심과 졸음으로 한 동안 지내다가 어느 순간에는 성서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도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내 마음이 조용히 침잠되어야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침묵을 지키면서 함께 피정하는 교우들과 친교를 나누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조금씩 설명되었다. 동트기전 새벽녁에 어두운 방에서 묵상하다가 문득 눈을 뜨니 밝은 새벽이 열려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피정집의 조그마한 성당에 앉아서 졸음반 기도반으로 한시간을 지내면서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만져보기도 했다.

신부님의 권고를 받아서, 성서 읽기, 묵상, 기도, 산책, 수면, 식사 등 상세한 시간 계획표를 만들어 규칙적인 생활을 지내도록 노력하고 피정집 20에이커의 주변을 파헤치듯이 산책하고 다녔던 시간은 덤으로 얻은 좋은 경험이었다. 산책로를 매일 반복해 다니고 정원의 곳곳에 있는 팻말 문구들을 매일 반복해서 읽다보니, 주변의 나무, 바위, 의자, 지나간 바람, 오솔길, 걸어갔던 사람들, 정원을 가꾸었던 사람들, 팻말에 적혀있는 돌아가신 신부님, 그 당시의 교우들...... 모든 것들안에있는 사람과 자연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이 올라왔다.

피정 끝무렵 나눔의 시간에서, 하느님은 참으로 많은 분들과 각각 다른 만남을 가지시고 깊이 또한 다르게 지내셨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 은총의 시간을 갖었다고 증언하였다. 길다고 생각했던 피정은 어느덧 순식간에 지나갔고, 피정이 끝나면 큰 소리를 외쳐보고 싶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고개가 숙여지고 겸손해 진다는 말처럼 사뭇 차분하게 피정을 마쳤다.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새롭게 배우고 느낀 점도 많아서 세밀히 나누고 싶었지만 말로써 다 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어서 그저 좋았다는 말밖에는 하지않고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도움되는 것을 찾는 성당의 교우들이나 내가 존경하는 이웃들에게 첫번째로 권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이냐시오 영성 피정일 것이다. 하기야 다른 피정을 해보지 않았으니 비교할 것도 없지만.

지도해주신 신부님과 봉사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다시 올린다.

2005년 2월17일

김 용주 안토니오
(아틀란타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