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제5차 영신수련의 피정자로 참여하셨던 제노비아 자매님의 영신수련 후기를 올립니다. 함께 피정의 소감을 나누어 보는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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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특별한 은총을 바란다거나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이 그저 현대문명이 주는공해와 일상생활에서 떠나 조용한 가운데 기도하며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피정의 집에 도착하였다. 이나시오 영성피정은 침묵 가운데 하는 수련법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피정의 집 현관 문 앞에는 “절대 침묵” 이라는 글씨가 위협적으로 크게 써 붙여져 있고 안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또 같은 싸인이 붙어 있어 저절로 입이 얼어 붙게 하였다. “침묵 속의 자유”, “당신의 말이 나를 방해합니다.”라는 쪽지도 계시판에 붙어있다.

       오늘은 피정 첫날인 동시에 재의 수요일. 사순절이 시작 되는 날이기도하다.
신부님께서는 우연의 일치지만  사순절에 피정을 하는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축하해 주시며 강의 끝에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기도할 성서 구절을 숙제로 주셨다.

       피정 둘 째 날 아침.   어제 저녁과  같은 성서 구절로 기도를 드리는동안  나는 이미 깊숙한 내면으로 침잠되어 있었고  이제까지 내 자신은 모르고 지냈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체험하였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쳐도 침묵은 물론이요 눈길도 피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신부님의 말씀대로 이미 우리는 자신과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 들어가 있었다.

       피정 셋 째날 .  오늘 밤엔 만찬 미사가 있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시던 때를 떠 올리며 둥그렇게 의자에 둘러 앉아 미사를 시작하였다. 말씀의 전례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피정 참석자 모두의 발을 씻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는 동시에 가슴에서 무언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우리의 발을 씻으시겠다는걸까?

맨 첫 번째 피정 참가자 앞에  서시며 팔에 수건을 둘르시고 앉으시는 신부님의 뒷 모습을 보고 아, 저기에 예수님이 오셨구나, 이분은 살아 계신 예수님. 이 때  신부님의 뒷모습이 실체보다 더 커 보이면서 신부님의 몸 세포 하나 하나가 사랑으로 채워지신 듯  했다. 이분은 살아계신 예수님의 표상 이시라는감동에 눈물이  저절로 나오며 묵상을 하였다. 그  순간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게 건네는 말 한마디. 절대 침묵을 지켰어야할 순간을 깨므로써 나의 묵상은 방해를 받아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내 차례가되어 신부님께서 내 앞에 와 앉으셨을 때  나는 황송하여 발가락을 오므린채 두발을 내밀며  “신부님, 저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 주십시요.”하고 속으로 간구하고, 앉은채로 허리굽혀 감사의 절을 드렸다.

요한 복음 13장을 다시 묵상하며  예수님과 또 오늘저녁 보여 주신 신부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며 나도 가족들과 이웃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기도 드렸다. 세족례를 마치시고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불필요한 애착을 버리고 이웃에 사랑을 행동으로 나누는 삶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미사를 마치셨다.

오늘저녁 신부님께서는 행동하는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셨던 것이다.

       피정 넷째날.   어제 밤의 특별한 만찬 미사의 감동으로 나는 더욱 깊이 기도 속에 들어 갈 수 있었고 피정의 집 경내를 산책하면서도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더욱 감사를 드렸다. 오늘 밤은 수난미사를 드리는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수난을 음미하는 날이다. 미사실로 들어 서니 한쪽 구석에  작은 랜턴  하나가 방 안을 흐미하게 비출 뿐 서로의 얼굴도 분별하기  힘들다. 제대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침묵 속에 모두 묵상에 잠겨있다.

드디어 신부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정갈하게 접힌 두 폭의 흰 천을 조심스레 펼쳐서 십자가 모형을 방 한가운데 만드시고 십자가의 머리쪽에 촛불과 성작과 성체를 준비하신다. 오늘의 미사도 특별하겠구나 하는 호기심과 함께 한편으론 어떤 것 일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심부님께서는 흰 천으로 된 십자가 모형위로 가시더니 입고 계시던 장백의, 영대, 띠를 벗으셔서 아주 정성스럽게 어떤 형태를 취하시며 그 위에 접어 놓으신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꽃다발을  놓으시고는 정중하게 그 앞에 절을 하신다.  우리도 차례로 나가 예수님의 무덤앞에 절을 올리고 돌아와 앉아 묵상을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의 고통이 너무나 가슴아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잠시후 눈을 뜨고 다시 예수님의 상징적 무덤을 바라보니 그위에는 두개의 아름다운 빛의 고리가 크게 나타나 있었다.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빛의 고리. 어리둥절하여 바라보는 가운데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나며 내 마음은 점차 편안해 져 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나는 저기 놓여 있는 주님의 옷 자락이 자꾸만 만지고 싶어졌다. 저걸 감히 내가 만져도 되는 것일까. 안돼, 안되는 걸 꺼야.  그러고 있는동안 사람들은 하나 둘 나가고 나는 다시 예수님의 무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극히  평온한 마음상태로 그 앞에 꿇어 앉으니 마치 돌아가신 친정 아버님의 무덤앞에 앉아있는 듯이 친근한 기분이들었다. 오늘 밤 십자가 위에 보여 주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빛의 선물은 내게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무한한 감사를 드렸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고통을 생각하며 내게도 어떤 상처나 고통도 이겨 나갈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드렸다.

       피정마지막날. 신부님께서는 이제 우리는 이나시오 성인이 가르쳐 주신 영성기도 방법을 배워 기도의 참 맛을 알았지만 기도만 하는 자신에 머무르지 말고 우리 이웃과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같은사랑을 나누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하셨다.

       하루 일과가 기도로 이어지는 4박5일의 피정이었지만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수난 주간에 피정을하여 만찬 미사와 수난 미사는 더욱 더 그 의미가 깊었고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 해 주시는가를 깨닫게하는 행복의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