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만이  

하느님께서 세상만물 속에서
행하시는 활동을 철두철미하게
믿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이 비참한 세상에서 자주
또 계속해서 받고있는
유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 전체가 이 같은
극적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선택된
백성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온갖 상황에서 끊임없이
"너는 나를 믿느냐?"는
물음을 던지시는 소수 인간들의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나는 강한 팔로 이집트 종살이에서
너를 끌어내 왔고
너를 마른 땅으로 인도했으며
너를 천상 만나로 양육했으며
바위에서 샘솟은 물로
너를 마시게 한 하느님이다.

나는 너를 위해 이집트의
맏자식들에게 재앙을 내렸고
너를 위해 권력을 지닌 왕들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너는 이런 놀라운 기적들과
끊임없는 도움을 베풀어 준
내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했느냐?
너는 나무와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너의 하느님인 나를 저버렸다."

이것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온 역사요,
이스라엘의 역사요,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회개시키는
일을 위해서는 위대한
설교가들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고는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마치 성무일도에서
거의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고
바치는 청원기도처럼
쓸모없는 것으로 전략시켜 버립니다.

이와 같이 이상한 풍토에서는
기도와 모순과 타협이 뒤썪여 있는
빈약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신앙과 감상적 성향의
허울 좋은 희미한 빛 속에서
하느님과 세상 사이 등거리를
유지하며 흘러가게 됩니다.

하느님만이 계시고, 하느님만이 아시며,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