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4328_1086426614715126_756149771556350758_n.jpg : 12월 3일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축일입니다

2월 3일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4월 7일, 오늘날 스페인 나바르 지역의 팜플로나 외곽에 위치한 하비에르 성에서 귀족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집안은 점차 쇠퇴하고 있었으나, 자녀의 교육을 등한시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는 파리로 보내졌다. 파리에서 공부를 할 때, 그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를 만난다. 입신출세를 꿈꾸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이냐시오의 설득에 의하여, 그의 초기 동료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당시, 하비에르가 감명을 받았던 말씀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마태 16,26)였다.

1537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요청에 따라, 1541년에 인도의 고아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이것은 예수회의 첫 번째 해외 선교였다. 그는, 근 십여 년 동안, 인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곳에서, 하비에르가 이냐시오에게 보낸 편지에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여기에 온 후 저는 쉴 틈이 없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아직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모두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흔히 말하듯이 오른손과 왼손을 구별할 줄 모르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자주 졸라서 성무일도를 보거나 식사하거나 또는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선교를 목표로 하였던 그는, 중국 대륙을 눈앞에 두고, 그곳에 들어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1552년 12월 3일, 중국 광둥지역에 있는 상치안 섬의 어느 한 초막에서 사망하였다.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시성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던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애덕송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주님이십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저의 구원 때문도,
벌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당신께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저를 온전히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주님이십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천국의 영예도, 상을 원해서도 아닙니다.
당신은 저를 먼저 사랑하시고
저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저를 온전히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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