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41465c46188ac738b4593.jpg :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국회 연설 전문-2015년 9월 24일 (하비에르 공동체 김 준호 형제님 번역)150924102633-07-pope-francis-0924-super-169.jpg :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국회 연설 전문-2015년 9월 24일 (하비에르 공동체 김 준호 형제님 번역)


Full Text of Pope Francis’ Speech to Congress: SEP 24, 2015 POPE FRANCIS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국회 연설 전문

2015 9 24


Editor’s note: This is the full prepared text of Pope Francis’ speech to Congress, which he followed closely.

편집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의 국회 연설을 위해 준비된 전문입니다. 실제 연설과 거의 같습니다.

I am most grateful for your invitation to address this Joint Session of Congress in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I would like to think that the reason for this is that I too am a son of this great continent, from which we have all received so much and toward which we share a common responsibility.

“자유로운 사람들의 땅이고, 용감한 사람들의 안식처”인 이곳에서 상하 합동 의회 연설을 하도록 초대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를 초대해 주신 것은, 저 또한 이 위대한 대륙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은 우리 모두가 풍요롭게 물려받았고, 공동 책임을 나누어야 할 땅입니다.

Each son or daughter of a given country has a mission, a personal and social responsibility. Your own responsibility as members of Congress is to enable this country, by your legislative activity, to grow as a nation. You are the face of its people, their representatives. You are called to defend and preserve the dignity of your fellow citizens in the tireless and demanding pursuit of the common good, for this is the chief aim of all politics. A political society endures when it seeks, as a vocation, to satisfy common needs by stimulating the growth of all its members, especially those in situations of greater vulnerability or risk. Legislative activity is always based on care for the people. To this you have been invited, called and convened by those who elected you.

어느 한 나라의 아들과 딸들은 사명, 즉 개인적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의회의 의원으로써 여러분들의 책임은 입법활동을 통해 국가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국민의 얼굴이고 그들의 대표자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정치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인 공동 선을 추구하고, 국민들의 존엄을 지키고 수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정치적인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더 취약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성장을 고무함으로써, 기본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소명으로 추구할 때 지속되는 것입니다. 입법활동은 항상 국민들을 돌보는 것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선출해 준 사람들에 의해 초대되고 부름을 받아서, 의회에 소집되어 온 것입니다.

Yours is a work which makes me reflect in two ways on the figure of Moses. On the one hand, the patriarch and lawgiver of the people of Israel symbolizes the need of peoples to keep alive their sense of unity by means of just legislation. On the other, the figure of Moses leads us directly to God and thus to the transcendent dignity of the human being. Moses provides us with a good synthesis of your work: you are asked to protect, by means of the law, the image and likeness fashioned by God on every human face.

여러분들의 일은 두 가지 면에서 모세라는 인물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족장과 입법자들은 공정한 입법을 통하여, 그들 공통체의 유대감을 이어감으로써 백성들의 필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 같은 인물이 우리를 하느님에게 직접 인도해서 우리에게 초월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잘 통괄해 줍니다. 여러분은, 입법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빚으신 이미지와 유사성을 보호하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Today I would like not only to address you, but through you the entir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Here, together with their representatives, I woul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dialogue with the many thousands of men and women who strive each day to do an honest day’s work, to bring home their daily bread, to save money and—one step at a time—to build a better life for their families. These are men and women who are not concerned simply with paying their taxes, but in their own quiet way sustain the life of society. They generate solidarity by their actions, and they create organizations which offer a helping hand to those most in need.

오늘 저는 여러분들뿐 아니라, 당신들을 통해 미국 전 국민들 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전 국민들의 대표자들과 함께,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일하고, 일용할 양식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저축을 하며 - 한 번에 한 걸음씩 - 자기 가족에게 보다 나은 삶을 꾸리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남성들과 여성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세금을 내는 정도가 아니고, 그들 방식으로 조용하게 사회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남녀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의 활동을 통해 결속을 만들어 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조직을 창출합니다.

I would also like to enter into dialogue with the many elderly persons who are a storehouse of wisdom forged by experience, and who seek in many ways, especially through volunteer work, to share their stories and their insights. I know that many of them are retired, but still active; they keep working to build up this land. I also want to dialogue with all those young people who are working to realize their great and noble aspirations, who are not led astray by facile proposals, and who face difficult situations, often as a result of immaturity on the part of many adults. I wish to dialogue with all of you, and I would like to do so through the historical memory of your people.

저는 또한 많은 나이를 드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 분들은 경험으로 주조된 지혜의 보고이며 그 분들은 많은 방법으로, 특히 자원 봉사를 통하여 그들의 보고와 식견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은퇴하였지만, 아직도 활동하고 있으며, 이 땅을 키우기 위해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위대하고 고결한 포부를 실현시키고자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안이한 제안에 미혹되지 않으며, 종종 어른들의 미 성숙 때문에 초래된 어려운 상황을 대면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와 대화를 하고 싶으며, 이 대화를 미국 국민들의 기억 속에 있는 역사를 살펴보며 하고 싶습니다.

My visit takes place at a time when men and women of good will are marking the anniversaries of several great Americans. The complexities of history and the reality of human weakness notwithstanding, these men and women, for all their many differences and limitations, were able by hard work and self-sacrifice—some at the cost of their lives—to build a better future. They shaped fundamental values which will endure forever in the spirit of the American people. A people with this spirit can live through many crises, tensions and conflicts, while always finding the resources to move forward, and to do so with dignity. These men and women offer us a way of seeing and interpreting reality. In honoring their memory, we are inspired, even amid conflicts, and in the here and now of each day, to draw upon our deepest cultural reserves.

저의 방문은 좋은 뜻을 가진 남녀들로 몇 명의 위대한 미국인 기념일을 기리는 때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역사와 인간들의 현실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남녀들은 그들의 차이점과 한계와 함께 노고와 희생으로 때로는 목숨도 바쳐가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구축했습니다. 그들은 미국 국민들의 정신에 영원히 지속될 근본적 가치를 정립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수 많은 울부짖음과 긴장과 갈등을 겪지만, 언제나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품위를 잃지 않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남녀들은 우리에게 현실을 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제공해줍니다. 그들을 추모하면서 우리는 갈등 속에서도, 그리고 지금 여기 매일 이 순간에 영감을 받아 우리의 가장 깊은 문화적 보고를 이용하게 됩니다.

 

I would like to mention four of these Americans: Abraham Lincoln, Martin Luther King, Dorothy Day and Thomas Merton.

나는 네 명의 미국인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분들은 에이브럼 링컨, 마틴 루터 킹, 도로시 데이 그리고 토머스 머튼입니다.

This year marks the one hundred and fiftieth anniversary of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Abraham Lincoln, the guardian of liberty, who labored tirelessly that “this nation, under God, [might] have a new birth of freedom.” Building a future of freedom requires love of the common good and cooperation in a spirit of subsidiarity and solidarity.

금년은, “신의 가호로 이 나라에 자유를 탄생시키소서”라고 쉼없이 노력해온 자유의 수호자 에이브럼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지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자유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것은 공동 선에 대한 애정과 보완과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협동을 필요로 합니다.

All of us are quite aware of, and deeply worried by, the disturbing social and political situation of the world today. Our world is increasingly a place of violent conflict, hatred and brutal atrocities, committed even in the name of God and of religion. We know that no religion is immune from forms of individual delusion or ideological extremism. This means that we must be especially attentive to every type of fundamentalism, whether religious or of any other kind. A delicate balance is required to combat violence perpetrated in the name of a religion, an ideology or an economic system, while also safeguarding religious freedom, intellectual freedom and individual freedoms. But there is another temptation which we must especially guard against: the simplistic reductionism which sees only good or evil; or, if you will, the righteous and sinners. The contemporary world, with its open wounds which affect so many of our brothers and sisters, demands that we confront every form of polarization which would divide it into these two camps. We know that in the attempt to be freed of the enemy without, we can be tempted to feed the enemy within. To imitate the hatred and violence of tyrants and murderers is the best way to take their place. That is something which you, as a people, reject.

우리 모두는 현 세계의 불안한 사회적 정치적인 상황을 익히 알고 있고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세상은 점점 하느님과 종교의 이름으로 조차 폭력적 충돌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증오가 확대되고 짐승같은 잔혹행위들이 자행되는 곳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개인적인 망상이나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이던 아니던 모든 종류의 근본주의를 특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체제 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적 행위에 대처하면서 종교의 자유, 지적 자유,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아주 섬세한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유혹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말하자면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는 단순 환원주의가 그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받는 우리의 수많은 형제와 자매들이, 세상을 두 진영으로 나누어 버리는 모든 형태의 양극화에 맞서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외부의 적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우리 내부의 적을 키우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독재자와 살인자들의 증오와 폭력을 그대로 따라하는 하는 것이 그들의 자리를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만, 그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여러분이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Our response must instead be one of hope and healing, of peace and justice. We are asked to summon the courage and the intelligence to resolve today’s many geopolitical and economic crises. Even in the developed world, the effects of unjust structures and actions are all too apparent. Our efforts must aim at restoring hope, righting wrongs, maintaining commitments, and thus promoting the well-being of individuals and of peoples. We must move forward together, as one, in a renewed spirit of fraternity and solidarity, cooperating generously for the common good.

우리의 응답은 희망과 치유, 평화와 정의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수많은 지정학적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용기와 지혜를 끌어 모아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조차 정의롭지 못한 구조와 행위들이 분명히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희망을 되살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공약을 반드시 지켜서, 개인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 선을 위해 관대하고 협력하는, 새로워진 우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The challenges facing us today call for a renewal of that spirit of cooperation, which has accomplished so much good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The complexity, the gravity and the urgency of these challenges demand that we pool our resources and talents, and resolve to support one another, with respect for our differences and our convictions of conscience.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그 동안 미국의 역사를 통해 좋은 일을 많이 성취해 온 협동의 정신을 다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 도전은 대단히 복잡하고, 심각하고, 그리고 긴급하여, 우리의 자원들과 재능들을 모두 한 곳에 모으고, 각자의 다른 점과 신념을 존중하면서, 서로 돕고 협력하도록 우리는 결의하여야 합니다.

In this land, the various religious denominations have greatly contributed to building and strengthening society. It is important that today, as in the past, the voice of faith continue to be heard, for it is a voice of fraternity and love, which tries to bring out the best in each person and in each society. Such cooperation is a powerful resource in the battle to eliminate new global forms of slavery, born of grave injustices which can be overcome only through new policies and new forms of social consensus.

이 땅에서는 수 많은 종교 교파들이 미국 사회를 건설하고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과거에서와 같이, 오늘날에도, 믿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것은 각 개개인과 각 사회에서 가장 좋은 것을 끄집어내려는 형제애와 사랑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협동은 전 지구적인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를 몰아내기 위한 싸움에 강력한 자원이 됩니다. 이 노예제는 심각한 불의에서 유래한 것인데,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합의로써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Here I think of the political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where democracy is deeply rooted in the mind of the American people. All political activity must serve and promote the good of the human person and be based on respect for his or her dignity.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4 July 1776). If politics must truly be at the service of the human person, it follows that it cannot be a slave to the economy and finance. Politics is, instead, an expression of our compelling need to live as one, in order to build as one the greatest common good: that of a community which sacrifices particular interests in order to share, in justice and peace, its goods, its interests, its social life. I do not underestimate the difficulty that this involves, but I encourage you in this effort.

여기서 나는 민주주의가 국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미국의 정치사를 돌아봅니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선한 인간을 지원하고 진흥시켜야 하며, 그와 그녀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데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 창조주는 개의 양도할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 1776 7 4) 정치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면, 정치는 경제와 화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치는 우리가 가장 위대한 공동 선을 함께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로 살아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욕구의 표현입니다. 공동 선은 재산, 이익,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서로 나누기 위해 사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공동체의 선을 말합니다. 나는 이에 따른 어려움을 과소평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이 노력하도록 촉구합니다.

Here too I think of the march which Martin Luther King led from Selma to Montgomery fifty years ago as part of the campaign to fulfill his “dream” of full civil and political rights for African Americans. That dream continues to inspire us all. I am happy that America continues to be, for many, a land of “dreams.” Dreams which lead to action, to participation, to commitment. Dreams which awaken what is deepest and truest in the life of a people.

여기서 나는 마틴 루터 킹이 50년전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이끌었던 시가행진을 생각합니다. 이 행진은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의 완벽한 시민권과 참정권을 얻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그 꿈은 지금도 우리 모두를 고무시킵니다. 나는 아직도 미국이 수 많은 사람들의 꿈의 땅이라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사람들을 실천하고, 참여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꿈. 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깊은 것, 가장 진실한 것을 일깨워주는 꿈입니다.

In recent centuries, millions of people came to this land to pursue their dream of building a future in freedom. We, the people of this continent, are not fearful of foreigners, because most of us were once foreigners. I say this to you as the son of immigrants, knowing that so many of you are also descended from immigrants. Tragically, the rights of those who were here long before us were not always respected. For those peoples and their nations, from the heart of American democracy, I wish to reaffirm my highest esteem and appreciation. Those first contacts were often turbulent and violent, but it is difficult to judge the past by the criteria of the present. Nonetheless, when the stranger in our midst appeals to us, we must not repeat the sins and the errors of the past. We must resolve now to live as nobly and as justly as possible, as we educate new generations not to turn their back on our “neighbors” and everything around us. Building a nation calls us to recognize that we must constantly relate to others, rejecting a mindset of hostility in order to adopt one of reciprocal subsidiarity, in a constant effort to do our best. I am confident that we can do this.

금세기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유로운 미래를 위한 꿈을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우리, 이 대륙의 국민들은 외국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과거에 외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의 상당수가 이민자들의 후손임을 알고 있기에, 저 또한 이민자의 아들로써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여기에 오기 이전에 이 땅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권리가 항상 존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들을 위해. 미국 민주주의의 양심에 대한 저의 존경과 감사를 다시 확인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의 처음 만남은 격렬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들 한 가운데에 외국인들이 갑자기 등장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죄악과 실수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가능한 한 관대하고 공정하게 살아가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신세대들에게 우리의 “이웃들”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등을 돌리지 않도록 교육하면서, 우리는 지금 가능한 한 관대하고 공정하게 살아가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국가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타인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을 때, 상호간의 적대감을 씻어내고, 상호 보완성의 정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Our world is facing a refugee crisis of a magnitude not seen since the Second World War. This presents us with great challenges and many hard decisions. On this continent, too, thousands of persons are led to travel north in search of a better life for themselves and for their loved ones, in search of greater opportunities. Is this not what we want for our own children? We must not be taken aback by their numbers, but rather view them as persons, seeing their faces and listening to their stories, trying to respond as best we can to their situation. To respond in a way which is always humane, just and fraternal. We need to avoid a common temptation nowadays: to discard whatever proves troublesome. Let us remember the Golden Rule: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Mt 7:12).

지금 우리는 2차대전 이후 처음 보는 규모의 난민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문제는 큰 도전과 어려운 결정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수천의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찾아서 북미지역으로 이주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우리 자식들을 위해 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들이 수가 많다고 겁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고,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의 상황에 최대한 대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인간적이고, 공정하고, 우애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것은 미리 없애버리자는, 요즈음 만연한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황금률을 기억합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This Rule points us in a clear direction. Let us treat others with the same passion and compassion with which we want to be treated. Let us seek for others the same possibilities which we seek for ourselves. Let us help others to grow, as we would like to be helped ourselves. In a word, if we want security, let us give security; if we want life, let us give life; if we want opportunities, let us provide opportunities. The yardstick we use for others will be the yardstick which time will use for us. The Golden Rule also reminds us of our responsibility to protect and defend human life at every stage of its development.

이 황금률은 우리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받기 원하는 똑같은 감정과 공감으로 타인을 대하십시오. 우리 스스로에게 모색하는 똑같은 가능성으로 타인의 가능성을 모색하십시오. 우리 스스로가 도움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의 성장을 도와주십시오. 한 마디로 우리가 안전을 원하면, 그들에게 안전을 보장하십시오. 우리가 생명을 원하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십시오. 우리가 기회를 원하면,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가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잣대는 나중에 우리에게 사용될 잣대가 될 것입니다. 황금률은 우리에게 인간 성장의 모든 단계마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This conviction has led me, from the beginning of my ministry, to advocate at different levels for the global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I am convinced that this way is the best, since every life is sacred, every human person is endowed with an inalienable dignity, and society can only benefit from the rehabilitation of those convicted of crimes. Recently my brother bishops here in the United States renewed their call for the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Not only do I support them, but I also offer encouragement to all those who are convinced that a just and necessary punishment must never exclude the dimension of hope and the goal of rehabilitation.

제가 사목을 시작한 후부터,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다양한 수위로 전 세계적으로 사형 제 폐지를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길이 최선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는,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이며, 모든 인간 개개인은 침해될 수 없는 존엄성을 부여받았으며, 우리 사회는 유죄 확정된 범죄자 조차도 재활시킴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 동료 주교는 여기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를 지지할 뿐 아니라. 저는 정의롭고 필수불가결한 처벌에도 희망과 재활이라는 목표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In these times when social concerns are so important, I cannot fail to mention the Servant of God Dorothy Day, who founded the Catholic Worker Movement. Her social activism, her passion for justice and for the cause of the oppressed, were inspired by the Gospel, her faith, and the example of the saints.

최근에 사회적 관심사가 중요해 지면서, 가톨릭 노동자 운동을 창시한 도로시 데이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사회 운동, 그녀의 정의와 억압받는 사람을 위한 열정은 복음과 그녀의 믿음 그리고 성인들의 모범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How much progress has been made in this area in so many parts of the world! How much has been done in these first years of the third millennium to raise people out of extreme poverty! I know that you share my conviction that much more still needs to be done, and that in times of crisis and economic hardship a spirit of global solidarity must not be lost. At the same time I would encourage you to keep in mind all those people around us who are trapped in a cycle of poverty. They too need to be given hope. The fight against poverty and hunger must be fought constantly and on many fronts, especially in its causes. I know that many Americans today, as in the past, are working to deal with this problem.

전 세계 수많은 지역 중 이 곳에서 얼마나 경제적 사회적 진보가 성취 되었습니까. 세 번째 천년의 처음 몇 년 동안 극빈 문제가 얼마나 해결되었습니까?  아직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경제공황기나 경기침체기에는 전세계적 규모의 연대정신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과 제가 같이 믿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우리 주위에 빈곤의 사슬에 묶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잊지 말기를 여러분들에게 강조합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절실합니다. 빈곤과 배고픔에 대한 투쟁은, 다양한 관점에서, 특히 그 원인을 찾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싸워나가야 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It goes without saying that part of this great effort is the creation and distribution of wealth. The right use of natural resources, the proper application of technology and the harnessing of the spirit of enterprise are essential elements of an economy which seeks to be modern, inclusive and sustainable. “Business is a noble vocation, directed to producing wealth and improving the world. It can be a fruitful source of prosperity for the area in which it operates, especially if it sees the creation of jobs as an essential part of its service to the common good” (Laudato Si’, 129). This common good also includes the earth, a central theme of the encyclical which I recently wrote in order to “enter into dialogue with all people about our common home” (ibid., 3). “We need a conversation which includes everyone, since the environmental challenge we are undergoing, and its human roots, concern and affect us all” (ibid., 14).

이러한 위대한 노력의 한 부분이 경제적 부의 창출과 분배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연자원의 정당한 사용, 기술의 적정한 적용, 그리고 기업정신의 활용은 경제를 현대화하고 포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들입니다. “부를 창출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경제활동은 고귀한 소명입니다. 경제활동은 공동선의 진전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인 일자리를 창출에 기여할 때, 그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특히 번영의 유익한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129) 이 공동선은 또한 제가 최근에 “우리의 보편적 가정공동체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과 대화하기 시작히기 위해” 저술한 회칙의 핵심 주제인 지구문제를 포함합니다. (같은 책 3). "우리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환경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며, 우리 모두에게 우려를 낳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같은 책 14)

In Laudato Si’, I call for a courageous and responsible effort to “redirect our steps” (ibid., 61), and to avert the most serious effects of the environmental deterioration caused by human activity. I am convinced that we can make a difference and I have no doubt that the United States – and this Congress – have an important role to play. Now is the time for courageous actions and strategies, aimed at implementing a “culture of care” (ibid., 231) and “an integrated approach to combating poverty, restoring dignity to the excluded, and at the same time protecting nature” (ibid., 139). “We have the freedom needed to limit and direct technology” (ibid., 112); “to devise intelligent ways of… developing and limiting our power” (ibid., 78); and to put technology “at the service of another type of progress, one which is healthier, more human, more social, more integral” (ibid., 112). In this regard, I am confident that America’s outstanding academic and research institutions can make a vital contribution in the years ahead.

'찬미받으소서‘에서, 저는 “우리의 방향을 수정”(같은 책 61)하고, 인간의 행위로 유발된 환경악화의 심각한 영향을 줄여나갈 용기 있고 책임 있는 노력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미국 - 그리고 미국의회 - 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제 “보호의 문화”(같은 책231) 그리고 “빈곤을 타파하기 위한 집중적인 정책, 소외된 사람들의 존엄성 회복, 그리고 동시에 자연의 보호”(같은 책139)의 실행에 목표를 둔 용기있는 행동과 전략의 실천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같은 책112): "그 것은 우리의 권력을 발전시키거나 제한하는 현명한 방식을 고안하고“(같은 책78): 기술을 ”더 건강하고, 더 인간적이고, 더 사회적이고, 보다 더 핵심적인 다른 방식의 진보에 쓰여지도록 (같은 책112).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수년내로 미국의 탁월한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핵심적인 기여를 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A century ago, at the beginning of the Great War, which Pope Benedict XV termed a “pointless slaughter”, another notable American was born: the Cistercian monk Thomas Merton. He remains a source of spiritual inspiration and a guide for many people. In his autobiography he wrote: “I came into the world. Free by nature, in the image of God, I was nevertheless the prisoner of my own violence and my own selfishness, in the image of the world into which I was born. That world was the picture of Hell, full of men like myself, loving God, and yet hating him; born to love him, living instead in fear of hopeless self-contradictory hungers”. Merton was above all a man of prayer, a thinker who challenged the certitudes of his time and opened new horizons for souls and for the Church. He was also a man of dialogue, a promoter of peace between peoples and religions.

베네딕토 교황이 “목적 없는 대학살”이라고 표현한 한 세기 전1차대전 초기에, 또 다른 중요한 미국인인 시토 수도회의 수도승 토마스 머튼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감과 가이드로 남아있습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천부적으로 자유롭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태어난 그 세상의 모습과 같이 나 자신의 폭력과 나 자신의 이기심의 포로였습니다. 그 세상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동시에 하느님을 증오하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태어났지만, 살아가면서 절망적인 자기모순 적인 갈망의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지옥의 형상이었습니다.  머튼은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 가 살 던 시대의 확신에 도전했고, 수많은 영혼들과 교회를 위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은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종교 간의 대화로 평화를 촉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From this perspective of dialogue, I would like to recognize the efforts made in recent months to help overcome historic differences linked to painful episodes of the past. It is my duty to build bridges and to help all men and women, in any way possible, to do the same. When countries which have been at odds resume the path of dialogue – a dialogue which may have been interrupted for the most legitimate of reasons – new opportunities open up for all. This has required, and requires, courage and daring, which is not the same as irresponsibility. A good political leader is one who, with the interests of all in mind, seizes the moment in a spirit of openness and pragmatism. A good political leader always opts to initiate processes rather than possessing spaces (cf. Evangelii Gaudium, 222-223).

대화의 관점에서, 저는 과거와 연관된 역사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몇 달 동안 이루어진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람들 간에 다리는 놓고 모든 남녀들이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 같은 노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이 대화의 길을 재개 한다면, 그 대화가 비록 아주 정당한 이유로 단절되었다 해도, 새로운 기회가 모두에게 열릴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용기와 대담함이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합니다. 이 것은 무책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좋은 정치 지도자는, 모든 사람의 이해를 마음에 간직하고, 솔직함과 실용주의의 정신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정치 지도자는 자기 자리에서 관망하기 보다는 항상 과정을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Being at the service of dialogue and peace also means being truly determined to minimize and, in the long term, to end the many armed conflicts throughout our world. Here we have to ask ourselves: Why are deadly weapons being sold to those who plan to inflict untold suffering on individuals and society? Sadly, the answer, as we all know, is simply for money: money that is drenched in blood, often innocent blood. In the face of this shameful and culpable silence, it is our duty to confront the problem and to stop the arms trade.

대화와 평화의 길에 서 있다는 것은, 전 세계에서 무장 충돌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완전히 끝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왜 개인과 사회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살상 무기가 팔리는 것일까요? 슬프게도 그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간단히 말해 돈 때문입니다. 그 돈은 피로 젖은 돈, 종종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흠뻑 젖은 돈입니다. 부끄럽고도 죄악스러운 침묵에 맞서, 무기 거래의 문제에 대항하고 중단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Three sons and a daughter of this land, four individuals and four dreams: Lincoln, liberty; Martin Luther King, liberty in plurality and non-exclusion; Dorothy Day, social justice and the rights of persons; and Thomas Merton, the capacity for dialogue and openness to God.

이 땅의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 네 명의 사람과 네 개의 꿈이 있습니다.  그 것은 링컨의 자유; 마틴 루터 킹의 다수의 그리고 포용적인 자유; 도로시 데이의 사회적 정의와 인간의 권리; 그리고 토마스 머튼의 하느님에 대한 대화와 열린 마음입니다.

Four representatives of the American people.

미국 국민들의 네 명의 대표

I will end my visit to your country in Philadelphia, where I will take part in the World Meeting of Families. It is my wish that throughout my visit the family should be a recurrent theme. How essential the family has been to the building of this country! And how worthy it remains of our support and encouragement! Yet I cannot hide my concern for the family, which is threatened, perhaps as never before, from within and without. Fundamental relationships are being called into question, as is the very basis of marriage and the family. I can only reiterate the importance and, above all, the richness and the beauty of family life.

미국 방문은 필라델피아에서 마칠 것입니다. 그 곳에서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 모임에 참가할 것입니다. 제 방문 전 과정을 통해 가정이 되풀이 되는 주제가 되길 바랍니다. 이 나라를 건설하는데 가정은 얼마나 필수적이었습니까! 가정은 우리가 강력히 지지하고 장려할 만찬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가정에 관한 우려를 숨길 수 가 없습니다. 우리 가정은 지금 내부와 외부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결혼과 가정의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인간관계가 의문시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단지 가정 생활의 중요성, 그리고 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거듭 반복하여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In particular, I would like to call attention to those family members who are the most vulnerable, the young. For many of them, a future filled with countless possibilities beckons, yet so many others seem disoriented and aimless, trapped in a hopeless maze of violence, abuse and despair. Their problems are our problems. We cannot avoid them. We need to face them together, to talk about them and to seek effective solutions rather than getting bogged down in discussions. At the risk of oversimplifying, we might say that we live in a culture which pressures young people not to start a family, because they lack possibilities for the future. Yet this same culture presents others with so many options that they too are dissuaded from starting a family.

특히, 나는 가장 취약한 가족 구성원인 젊은이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찬 미래가 손짓합니다. 그러나, 다른 젊은이 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고, 목표도 없으며, 폭력, 약물남용 그리고 절망의 미로에서 희망없이 빠져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부딪쳐야 합니다. 탁상공론에 빠지지 말고 서로 대화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단순화 시킬 위험이 있지만, 우리는 젊은이 들이 가정을 시작하지 못하게 압박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또한 다른 젊은이들에게는 많은 다른 삶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해서, 그들도 가정을 시작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합니다.

A nation can be considered great when it defends liberty as Lincoln did, when it fosters a culture which enables people to “dream” of full rights for all their brothers and sisters, as Martin Luther King sought to do; when it strives for justice and the cause of the oppressed, as Dorothy Day did by her tireless work, the fruit of a faith which becomes dialogue and sows peace in the contemplative style of Thomas Merton.

한 국가가 위대하다고 불릴 수 있으려면, 링컨이 했던 것처럼 자유를 수호해야 하며; 마틴 루터 킹이 추구했던 것처럼, 모든 형제와 자매들의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를 융성하게 해야 하며; 도로시 데이가 지치지 않고 일했던 것처럼, 정의를 위하여 싸우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여야 하며; 토마스 머튼이 관상적 방식으로 소통하고 평화의 씨앗을 뿌린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In these remarks I have sought to present some of the richness of your cultural heritage, of the spirit of the American people. It is my desire that this spirit continue to develop and grow, so that as many young people as possible can inherit and dwell in a land which has inspired so many people to dream.

이 연설에서 저는 미국 국민의 문화적 유산과 정신의 풍요로움을 얼마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이 미국의 정신이 계속 발전하고 성장해서 가능한 한 많은 젊은이들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꾸도록 영감을 주는 이 땅을 이어받고 살게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God bless America!

미국에 하느님의 축복이 내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