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냐시오 피정을 다녀와서


나는 주님이 ...참 밉다.
이번 이냐시오 피정에서 나에게 두가지 항복을 받아 내셨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첫날 강의에서 시작되었다.
 
신부님께서 강의중에 주님께서 각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하시면서 자꾸 내 세례명 베로니카를 예로 부르시는 것이었다.
"베로니카야, 베로니카야!"
 
이냐시오 성인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피정에 왔던 나는 이 순간부터 마치 숲속을 걸어가는데 숨겨진 오솔길을 찾아낸 기분으로 나도모르게 바로 묵상으로 자연스럽게 들어 가는 체험을 했다.
묵상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내 가슴에 어떤 부드럽지만 분명한 말씀이 차올랐다. " 베로니카야 베로니카야.. 내가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사실 주님께 말씀드릴 아니 주님 붙잡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담판이라도 짓고 싶은 각오로 이 피정에 들어 왔는데 그런데 내가 뭘 달라기도 전에 주님께서 먼저 물으시는게 아닌가.
놀라운 마음에 무엇을 주님께 요구할지 궁리를 하는데 갑자기 뭔가 뜨거운 것이 눈물과 함께 올라왔다.
'아!....몰라서 물으시는게 아니구나..'
이미 들어주신다는 전제하에 물어보신다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날카롭게 얼어붙어있던 내 가슴이 빙하가 무너지듯 그렇게 녹아져 내렸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를 한번도 굶긴적 없는 주님께 차마 돈과 건강 비지니스 이런걸 말씀드리기엔 너무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물만 흘리고 첫날을 보낸것 같다.
 
다음날은 신부님께서 성당의 십자가상의 예수님 표정이 좀 특별하니 그 앞에서 묵상을 해보라 하셨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러워 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지긋이 눈을 감고 마치 고통을 음미하고 계신듯한 미소마저 느껴지는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다.
 
나도 남편도 암을 겪었고 여러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많이 겪으며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에 화학전까지 못지않게 치룬지라 고통에 대해선 나도 할말이 많았다.
 
나는
 
"예수님 저도 당신처럼 고통을 받아들이게 해주세요.
 
도망가지 않게 해주세요. 향유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쏟아내고 있는데 주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그래 네 고통이 무엇이냐?" "............................."
 
나는 대답을 또 못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내 고통리스트는 어쩌면 고통이 아니라 은총리스트 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내가 십자가로 여기는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성당 문턱을 언제 밟았을지 지금도 알수없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앓았던 병 때문에 건강에 대한 집착과 그것에서 자유로워 졌으며
경제적인 굴곡은 세상이 준것이 아닌 주님이 주신것의 영원함과 귀함을 알게 해주었다.
결국 고통을 향유하고 계신 주님 앞에서 나는 감히 내것을 고통이라 이름 붙일수가 없었다.
나는 주님의 자녀로 태어난후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많은걸 내려놓고 이 가슴벅찬 기도를 그분께 드렸다.
" 주님, 매 순간 당신의 사랑을 느끼며 살게 해주세요. 그것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나를 걸어나와서 주님께 걸어가는 나의 여정은
막 시작되었을 뿐 여기가 완성도 끝도 아님을 알고 있다.
머지않아 또 넘어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막막함 앞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내가 목말라 찾고 또 찾던 삶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는 빛을 보는 것 같아 기쁘다.
이것을 알고 체험한 이상, 가다가 돌아가거나 길을 잃을수는 있어도 그 길을 가는것을 포기하진 않을것 같다.
그분의 자비를 맛보고 다른것을 그리워하지는 않을것 같다.
 


마이애미 성당 이귀남 베로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