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jpg : 2015년 유기서약 소감(첫서약)-김준호 원선시오-하비에르 공동체

166.jpg : 2015년 유기서약 소감(첫서약)-김준호 원선시오-하비에르 공동체


서약 소감

김준호 원선시오: 하비에르 공동체

소감이라기 보다는, 우선 내가 왜 이런 서약이라는 것을 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나는 원래 공동체를 좋아하지 않고 공동체 생활을 잘 하지도 못해서, 혼자 가는 사람인데, 서약을 했다는 것이 나 자신을 놀라게 한다.

서약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이왕 들어온 CLC 그냥 구경꾼으로 있는 것 보다는 정식 회원이 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약을 하기로 했는데, 서약 8주 피정 기도 중에, 이 서약이 그냥 형식적인 과정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대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받아 매우 놀란 것은 사실이며,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나 자신의 개인 적인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을 완화하려 했지만, 기도 중의 그 두려움과 감동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 메시지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던 내 생각이건 사탄의 생각이건 간에 서약으로 구경꾼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묘목이 좋은 땅으로 심어지고, 홀로 떨어져 있던 물방울 하나인 내가 다른 물방울과 합쳐 CLC라는 그릇에 담긴다면, 결코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나이에 첫 서약을 하려면 진작 할 것을 하고 후회도 하지만, 지금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라 서약을 허락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30여년의 신앙 생활이 사실은 이 서약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그 동안의 신앙 생활은 그저 싹이 트는 과정이었고, 이제부터 나무로 자라야 한다고 하면 그 동안의 내 신앙을 너무 비하하는 것일까? 비하는 아니겠지만, 나 자신도 사실 내 신앙이 어디에 있는지 자문하고 있었기에 이 서약이 어떤 중대한 의미를 줄지도 모르겠다. 혼자 떠 돌아다니는 것도 이제 지쳐서, 비록 털털거리지만 CLC라는 달구지에 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약을 한 후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겠다고 하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까지의 신앙생활과는 뭔가 다른 세계가 펼쳐질지 않을까 조금 가슴을 두근거리는 것도 신앙 생활에 활력을 주는 건강한 태도가 아닐까 자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