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토스카나 출신의 뛰어난 신학자이자 교회의 수호자였던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성인의 이름을 붙인 벨라르미노 학사, 이번 호에서는 그 곳에서 실습기로 사도직에 임하고 있는 최준열 수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강대 벨라르미노 기숙사와 맡으신 업무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현재 서강대학교는 2개의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학교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벨라르미노 학사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자본으로 운영하고 있는 곤자가 국제학사입니다. 저는 학교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벨라르미노 학사에서 현재 부학사장과 남학생 사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약 300명 정도이며, 저를 포함해 행정 4, 시설 3, 사설경비 3, 식당 6, 미화 여사님2, 그리고 각 층별로 조교 8명이 스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대외적으로는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주거비와 식비를 지원해 주는 국가사업을 전체적으로 총괄하고 있구요. 학교 기숙사 문제 중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는 기숙사 의무식 문제, 학생 자치회 자율권 문제 등 대외적인 현안들에 대해서 학교, 학생, 때로는 교육부와 조율하기도 합니다. 대내적으로는 학사장이신 조현철 신부님을 보좌하면서 소속 직원들을 지휘 감독하고 사생 선발, ·퇴사, 방 배정 등 기숙사 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며, 특히 이 곳에서 머무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일이 주된 업무라 할 수 있지요.

 

수사님이 느끼는 전체적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벨라르미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가족 같은 분위기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기숙사에 발령을 받고 학생들과 같이 지내면서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던 점은 거의 모든 사생들이 방문을 잠그지 않고 다닌다거나 심지어 방문을 모두 열어놓고 등교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각자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것을 잘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서로 신뢰가 없다면 요즘같이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특히 밤만 되면 다른 방 학생들끼리 옹기종기 휴게실에 모두 모여 통닭, 컵라면 등 야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마치 친형제처럼 지내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곤자가 국제학사에 비해 시설이 다소 낙후된 이곳에 많은 학생들이 모이는 이유도 결국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살고픈 학생들의 욕구를 벨라르미노 학사가 채워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러한 학생들 간의 끈끈한 정 때문에 학생들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하지요.

 

실습기 사도직으로 파견 받고 어느덧 1년 반이 다되어 후반기로 접어드시는데, 기숙사 있으면서 수사님은 학생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지요?

 

처음 실습기 사도직을 와서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면 기숙사내 가톨릭 신자수의 증가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벨라의 복음화가 저의 첫 목표였는데, 실 제로 이곳 기숙사로 와 보니 종교적인 색채로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고 특히나 종교라는 잣대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자칫 가톨릭에 대한 거부감만 더 증대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학생들과 종교의 매개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은 옛날 중국 전통 종교를 존중하고 선교활동을 펼쳤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선교방식이었습니다. 이 적응주의 선교방식의 핵심을 제가 이해한 방식은 상대방이 저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제가 그들의 생활방식에 맞추어 관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눈높이식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이 사감의 방식에 맞추어 생활하던 기존의 일방적 소통방식을 바꾸어 제가 학생들에게 맞추어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먼저 생각했던 것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고 그렇게 한 학기 정도 살펴보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던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바로 축구, 야식, 치킨!

그 다음으로 고민했던 것은 이런 아이템을 가지고 어떻게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생각하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소규모 동아리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즉 벨라르미노의 가장 큰 특징인 가족 같은 분위기의 장점을 살려서 사감과 학생들, 그리고 학생들끼리의 관계를 더욱더 친밀하고 끈끈하게 관계할 수 있는 방법이 기숙사내 동아리의 활성화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현재 학생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매개로 기숙사 사생 간 친목을 도모하는 FC BELLA라는 축구 동아리가 결성되었고, 이 동아리는 학교 내에서도 다른 축구팀과 정기전을 꾸준히 하면서 활동하고 있어 기숙사 인기 동아리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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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축구 동아리 모습

 

 

또한 이곳 학생들은 한창 크고 혈기왕성한 나이(?)라 식사 이후에도 저녁 12시만 넘으면 배고파 야식을 찾는데요. 야식의 욕구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는 제도가 바로 기숙사 통금 제도입니다. 12시 이후에는 통금으로 인해 문이 잠겨 야식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현실을 감안, 지하 식당에서 가끔 운영하던 매점을 저희가 인수를 하였습니다. 그곳을 외부가 아닌 학생들 자체적으로 봉사하는 의미에서 과자, 음료, 라면 등을 이윤을 거의 남기지 않고 원가 수준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매점 운영을 자발적으로 봉사하겠다는 학생들이 갈수록 많아져, 저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을 위해 봉사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들 또한 기쁘게 받아들여 현재 TOSCANA라는 이름으로 자치 동아리가 구성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식 중에서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치킨인데요. 요즘 치킨 가격이 비싸서 학생들 용돈으로는 자주 먹을 수 없는 대표적 야식이지요. 그래서 이 치킨을 학생들과 같이 먹으면서 기숙사에 대한 개선/건의사항을 룸메이트들과 이야기 할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저녁 야식으로 함께 먹으며 어려운 점들을 각 방을 돌면서 들어보아야겠다는 취지로 방팅을 사감님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이것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현재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재정적으로는 학사장이신 조현철 신부님께서 많은 부분 지원을 직접 해주셔서 도움을 받고 있지요.

 

올해 SBS 신년특집 한 프로그램에서 벨라르미노 기숙사의 한 남학생이 출연하여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최준열 수사님을 지목하여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고 이후로 주위 반응이 어땠는지요?

 

사실 방송 당일, 저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여기저기 연락이 와서 방송이 나오는 줄 알았고 이 때문에 저 또한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요. 전혀 제가 생각지도 못한 학생이 그런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서 의아해 했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는 실질적으로 특별히 해 준 것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좋게 평가를 해 주어서 매우 감사했구요. 그런 면에서 어떤 특별한 계기는 사실 없었어요. 대외적인 반응보다는 대내적으로, 특히 학교 내 사람들이나 예수회 신부, 수사님들이 반응이 더 뜨거워서 그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많은 학생들이 사는 만큼 크고 작은 사건, 여러 에피소드 들이 많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것 소개해 주세요.

 

제가 이곳에 와서 제일 가슴 아팠고 기숙사로 주님께서 저를 파견한 이유를 절실히 깨닫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작년 이맘때, 저는 본래 파견받기를 원했던 사도직장으로의 미련이 남아 기숙사 사도직에서 적응이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계속 편의점에서 점심식사 대신 삼각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그 친구에게 왜 밥 대신 삼각 김밥으로 자꾸 끼니를 해결하고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때 그 학생은 수업이 연강이라 학식을 따로 먹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몇 번 그 장면을 목격한 저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그 학생과 같이 방을 쓰는 선배 사생에게 진짜 수업이 있는지 알아보고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이유를 알아보라고 몰래 부탁을 했지요. 근데, 사정을 들어보니 그 학생이 점심을 해결할 돈이 없어 일주일 중 3번 정도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 당일 시간이 지나 먹지 못하는 삼각 김밥은 어차피 버려야 하는 것이니 자신이 그냥 가져다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내가 2년 동안 봉사해야할 가난한 예수님이 바로 이 학생들이구나 하는 강한 소명의식을 느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하여 최소한 우리 학생들에게만은 밥은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와 예수회 안팎으로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도 학교 교목처에서 2년 전부터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기금으로 도움을 주셨고, 특히 올해부터는 예수회 신부님들의 애정 어린 도움으로 예수회 공동체에서 절약하여 마련된 금액으로 도움을 주셔서 매달 25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점심비용을 장학금으로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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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기숙사 탁구대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앞에서도 말씀해 드린 것처럼 벨라르미노 학사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서강대 내에서도 가난한 학생들이 도움을 받는 대표적 기숙사입니다. 이 때문에 이러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수회원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회원들에게는 가난한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며, 동시에 매순간 가난에 대해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으며, 또한 세속적인 방법인 돈이나 물질적인 것으로만 해결되어야 하는 것도 어떤 방식으로는 따뜻한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곳도 이곳 벨라르미노 학사이기도 합니다. 이런 벨라르미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주신 덕분에 학생들이 건강하게 잘 생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예수회가 지향하는 교육이념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에 기반한 전인적 인격 양성이 벨라르미노에서도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늘 기도로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뷰 및 정리_김민호 수사]